진시황, 정말 불사의 약을 찾아 티베트로 원정했나?
|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 중국을 처음 통일한 진나라 시황제(秦始皇, BC259~BC210)는 불사의 약을 찾아 동쪽으로 탐사를 보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최근 티베트 고원 자릉호(扎陵湖) 북안에서 발견된 비문은, 시황제가 서쪽으로도 원정을 보냈음을 보여주는 새로운 물증으로 주목받는다.
발견된 비문은 황하의 원류에 가까운 청해성 자릉호 북안 해발 4,300m 지점의 암벽에 새겨졌다. 글자는 진나라 시대에 사용된 소전(小篆)으로, 내용은 "황제가 오대부 신(翳)에게 명하여 방사(方士)를 거느리고 차를 몰아 곤륜(昆仑)으로 가서 약(姚)을 채취하게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방사'는 연금술사를, '약'은 약초·동식물·광물 등 치료 자원을 의미하지만 문맥상 불사의 영약으로 해석할 수 있다. 비문에는 도착 날짜와 이동 거리도 기록되어 있으며, 약 62km 떨어진 최종 목적지까지 탐사대가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곤륜은 중국 고대 문헌에서 신선이 모이는 신성한 산으로 전해진다. 기존 기록에서는 시황제가 일본 동쪽으로 탐사를 보냈다는 이야기만 전했으나, 이번 비문은 서쪽으로의 원정 사실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첫 물증이다.
◆ 시황제 불사의 약 탐사, 티베트 고원에서 흔적 발견
비문은 2020년 처음 발견되었으나, 현대 위작 가능성과 고원 원정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며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2025년 6월, 중국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의 동타오(Tong Tao) 연구팀이 현장 조사와 분석 결과를 발표하면서 논란이 재점화됐다.
중국 국가문물국은 고고학자, 재료과학자, 서예사 연구자 등 학제적 팀을 두 차례 파견해 비문과 주변 환경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평날 도구로 새긴 흔적과 장기간 풍화로 생성된 2차 광물이 확인되었고, 현대 합금 도구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비문이 새겨진 석영사암은 내마모성이 뛰어나며, 주변 지형과 호수 덕분에 장기간 보존될 수 있었다. 연구팀은 "단일 석각의 연대와 진위를 과학적으로 검증한 사례로, 중국 비문 인증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미국 아르곤 국립연구소의 물리학자 리위엘린(Li Yuelin)도 현장 검증과 실험 분석이 당시 기술과 일치하며, 다른 요소들도 신뢰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증거는 명확하지만, 회의적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라고 덧붙였다.
◆ 시황제 원정, 학계에서 논란 이어져
발견자 청해사범대 교수 후광량(Hou Guangliang)은 "비문은 진나라 수도 함양에서 1,400km 이상 떨어진 지역에서 발견됐다. 당시의 혹독한 환경을 감안하면, 탐사대의 용기와 기술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진시황이 불사의 약을 찾아 서쪽 고원으로 원정을 떠났다는 전설은, 이번 발견을 통해 역사적 사실일 가능성을 얻게 됐다. 이는 전설과 현실이 맞닿는 지점을 보여주는 핵심 사료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검증 결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투명성을 요구하며 논란을 이어가고 있다. 베이징대의 신더용 교수는 SNS를 통해 "이 문제는 정부 권위만으로 결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논란은 비문의 진위는 물론, '곤륜'이라는 지명의 지리적 해석 문제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진시황은 수은이 함유된 불사약을 장기간 복용하다 독성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허무한 최후에도 불구하고, 영생을 향한 집념은 고원의 암벽에 기록으로 남아 전설과 역사가 교차하는 가능성을 새롭게 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