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꿀벌의 비행을 바꾸다

2025-09-22     김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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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꿀벌은 인류 농업과 생태계의 핵심적 존재다. 꽃가루받이를 통해 식량 생산을 지탱하며, 다양한 생태적 균형을 유지하는 중요한 곤충으로 꼽힌다. 

그러나 최근 수십 년간 세계 곳곳에서 "꿀벌 집단 붕괴 현상(Colony Collapse Disorder)"이 보고되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농약 사용, 서식지 감소, 기후변화 등 여러 요인이 지목돼 왔지만,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감염 역시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몬태나주립대 연구팀이 주도한 최신 연구는 꿀벌의 비행 능력이 바이러스 감염에 따라 극적으로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논문은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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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꿀벌의 비행에 영향을 미치는 두 얼굴의 바이러스

꿀벌을 감염시키는 대부분의 바이러스는 피코르나바이러스과에 속한다. 이 과에는 인류가 잘 아는 구제역 바이러스와 A형 간염 바이러스도 포함된다. 꿀벌 가운데서는 특히 날개불구바이러스(Deformed Wing Virus, DWV)와 낭충봉아부패병 바이러스(Sacbrood Virus, SBV)가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낭충봉아부패병 바이러스(SBV)는 주로 꿀벌 유충을 죽여 벌집의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날개불구바이러스(DWV)는 성충의 비행 능력을 마비시켜 벌집의 노동력을 붕괴시키는 역할을 한다. 

연구팀은 총 240마리의 꿀벌을 대상으로 비행 실험을 실시했다. 감염되지 않은 "모의 감염군"과 DWV, SBV에 서로 다른 강도로 감염된 집단을 비교한 결과, 극명한 차이가 드러났다. 비감염 꿀벌은 평균 58.4m를 비행했으나, DWV 감염 수준이 낮은 꿀벌은 21.9m, 높은 수준에서는 14.0m에 불과했다. 

반대로 SBV에 감염된 꿀벌은 활동 반경을 넓히며 더 먼 거리를 더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수학적 모델링에 따르면 DWV 고감염 꿀벌의 비행 거리는 49% 짧아졌고, SBV 고감염 꿀벌은 53% 더 길어졌다. 두 바이러스에 동시에 감염된 꿀벌은 DWV 단독 감염보다 멀리 날았지만, 건강한 개체보다는 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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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은 "DWV 감염은 집단의 채집 능력을 떨어뜨려 먹이 부족과 영양 스트레스로 이어질 수 있고, SBV 감염은 오히려 더 먼 비행을 가능하게 해 바이러스 확산 경로를 넓힐 수 있다"고 설명했다. 

◆ 개체의 변화가 군집과 생태계로 이어져 

연구팀은 이번 결과가 단순한 개체 행동 변화에 그치지 않고 집단과 생태계 전반에 파급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꿀벌의 비행은 대사적으로 가장 비용이 큰 활동으로, DWV 감염은 채집 능력을 저하시켜 식량 확보를 어렵게 하고 결국 집단 붕괴 위험을 높일 수 있다. 반대로 SBV 감염은 활동 반경을 넓히며 다른 개체나 종에 바이러스를 전파할 가능성을 키운다.

이번 연구는 꿀벌이 겉보기에는 건강해 보여도 바이러스 감염이 잠재적으로 생리적·행동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연구팀은 "무증상 감염이 개체의 행동을 바꾸고, 그 결과 군집 안정성과 생태계 균형에 연쇄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꿀벌의 건강은 인류 식량 안보와 직결되는 만큼, 앞으로 바이러스 탐지와 관리가 꿀벌 보존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