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공룡도 작은 질병 앞에서는 무력했다
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약 8,000만 년 전 브라질에 살던 거대한 목이 긴 공룡, 용각류(sauropod)도 작은 세균과 기생충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최근 연구에서 고대 공룡 화석에서 치명적인 골질환의 흔적이 발견되며, 이들의 삶이 멀리 떨어진 소행성 충돌 이전에도 위협받았음을 보여준다.
연구팀은 화석의 골병변 구조와 위치를 분석해, 감염이 공룡 사망 당시에도 진행 중이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번 논문은 국제학술지 '해부학적 기록(The Anatomical Record)' 최신호에 게재됐다.
◆ 습한 환경이 부른 치명적 질병
브라질 카리리 지역대학(URCA)의 고생물학자 티토 아우렐리아노(Tito Aureliano) 연구팀은 브라질 상파울루 주 '바카 모르타(Vaca Morta)' 유적에서 발견된 여섯 마리 용각류 화석에서 골수염(osteomyelitis) 증거를 확인했다. 골수염은 세균, 곰팡이, 바이러스 또는 기생충에 의해 뼈가 파괴되는 감염 질환으로, 오늘날 포유류와 조류, 파충류에서도 발생한다.
문제의 용각류들은 얕고 느린 강과 큰 웅덩이가 있는 습한 환경을 선호했다. 이 지역은 병원균과 이를 옮기는 생물에게 이상적인 서식지였고, 화석 흔적에서도 용각류가 당시 홍수평야와 늪지대를 주로 거닐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우렐리아노 연구팀은 "같은 시기, 같은 장소에서 발견된 화석들은 모두 유사한 골수염 증상을 보였다"며 "이 지역 환경이 많은 개체에게 병원균이 퍼질 조건을 제공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골병변은 치유 흔적이 없어, 공룡들이 감염 상태에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일부 뼈에서는 내부에만 병변이 있었지만, 병이 심각한 개체에서는 외부에도 원형 돌기 모양의 병변이 나타났다. 연구팀은 "병변 구조가 불규칙하고 혼란스러운 양상을 보여, 공룡의 물림 자국과는 구별된다. 이는 감염이 빠르게 진행됐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 작은 병원체가 위협한 거대 생명체
이번 발견은 공룡의 장대한 몸집이 작은 병원체 앞에서도 생존을 보장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고대 브라질의 용각류들은 물리적 크기로는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였지만, 미세한 감염과 질병에는 취약했다. 연구팀은 이러한 사례가 고대 생태계에서 질병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고 평가했다.
이는 공룡 질병이 생태계 구조와 개체군 생존에 미친 영향을 밝히는 데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된다. 특히, 병원체와 숙주 간 상호작용을 장기적·진화적 관점에서 분석함으로써, 현대 생물학과 진화 연구에도 응용될 수 있다.
연구팀은 "고대 용각류의 골수염 연구를 통해 현대 파충류와 조류의 감염병 이해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