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가 공원 나무보다 가뭄에 강한 까닭은?
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기록적인 폭염과 가뭄이 이어지는 유럽에서 의외의 생존 전략이 밝혀졌다. 도심의 가로수가 공원의 나무보다 가뭄에 잘 견디는 이유가 낡은 수도관에서 새어 나오는 물이라는 것이다.
이번 성과는 지난 7월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골드슈미트 국제학술회의(Goldschmidt Conference)’에서 발표됐으며, 과학 전문지 ‘뉴 사이언티스트(New Scientist)’에 소개됐다.
◆ 수도관 누수가 키운 강한 생명력
캐나다 케벡대학교 몬트리올캠퍼스의 앙드레 포와리에(André Poirier) 연구팀은 몬트리올 시내 공원과 가로수에 자라는 은단풍과 노르웨이단풍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연구팀은 나무 줄기에서 시료를 채취해 납 동위원소 비율을 분석하고 나이테와 비교해 수분 흡수원을 추적했다.
분석 결과, 공원의 나무에서는 대기오염과 관련된 납 동위원소가 검출된 반면, 가로수에서는 오래된 납 수도관에서 유래한 동위원소가 발견됐다.
이는 가로수가 빗물 대신 수도관에서 누수된 물을 흡수하고 있다는 증거로 해석된다. 몬트리올에서는 하루 5억 리터가 넘는 물이 수도관에서 새고 있다. 단풍나무 한 그루가 하루에 약 50리터의 물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누수는 가로수 생존의 실질적 버팀목이 된다.
◆ 공원보다 도심에서 더 잘 버틴다
도시는 홍수 방지를 위해 빗물을 빠르게 배수하도록 설계돼 토양에 스며드는 양이 적다. 그러나 낡은 상수도망에서 새는 물은 본래 낭비로 여겨지지만, 가로수에게는 안정적인 수분원으로 작용한다.
이번 결과는 몬트리올만의 특수한 사례에 그치지 않는다. 세계 여러 도시에서 노후 상수도관의 누수 문제가 보고되고 있으며, 동시에 기후변화로 인한 극심한 가뭄이 반복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연구는 “도심 수목이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생존 자원을 확보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도시 녹지의 회복력(resilience)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
포와리에 박사는 "좋은 소식은 도심 가로수를 계속 심을 수 있다는 점이다. 나무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고, 공원보다 도심에서 더 잘 살아남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발견은 도심의 나무가 공원 수목과는 다른 방식으로 가뭄을 견뎌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인디애나대학교의 가브리엘 필리페리(Gabriel Filippelli) 교수는 “가로수의 수분 이용 방식은 놀라울 정도다. 일반적으로는 공원의 나무가 더 건강할 것이라는 통념과는 대조적”이라며 이번 결과의 의미를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