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로봇이 고무줄 풀고 전선 끼우는 시대 연다

2025-08-21     김정은 기자
KAIST 석사과정 연구원 송민석(왼쪽)씨과 전산학부 박대형 교수.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KAIST

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전선, 고무줄, 의류처럼 마음대로 구부러지고 얽히는 물체들. 인간에게는 익숙한 일상이지만, 로봇에게는 가장 까다로운 난제로 꼽혀왔다. 형태가 일정하지 않고 움직임을 예측하기 어려워 제조·물류·서비스 산업 자동화를 가로막는 큰 벽이었던 것이다.

KAIST 연구팀이 이 한계를 뚫을 수 있는 인공지능 기반 조작 기술을 선보이며 로봇의 가능성을 크게 넓혔다.

이번 성과는 로봇공학 국제학술대회 ‘로보틱스: 사이언스 앤 시스템즈(Robotics: Science and Systems, RSS) 2025’에서 발표됐다.

◆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상상'하는 로봇

KAIST 전산학부 박대형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INR-DOM(Implicit Neural-Representation for Deformable Object Manipulation)’ 기술은 로봇이 관측한 부분적인 시각 정보만으로도 물체의 전체 형상을 복원하고 조작 방식을 학습하도록 돕는다.

연구팀은 기존 기술이 자기-가림(self-occlusion) 현상이나 무한한 자유도로 인해 제대로 다루지 못했던 변형 물체를, 마치 사람이 머릿속에서 전체 모습을 그려내듯 이해하게 만들었다.

이번 기술은 ‘잠재 신경 표현(Implicit Neural Representation)’ 방식을 이용해 불완전한 3차원 점 구름(point cloud) 데이터를 입력받으면 보이지 않는 영역까지 연속적인 곡면으로 재구성한다. 여기에 강화학습과 대조학습을 결합한 2단계 학습 구조를 도입해 로봇이 현재와 목표 상태 간 차이를 정밀하게 구분하고 최적의 조작 전략을 빠르게 학습하도록 했다. 이로써 로봇은 물체의 일부만 보아도 전체 구조를 예측하며 능숙하게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했다.

◆ 제조·물류 자동화 분야 확대 기대

연구팀이 INR-DOM을 적용한 실험에서 로봇은 고무링 끼우기, O링 설치, 꼬인 밴드 풀기 같은 난도 높은 과제를 수행해 기존 최고 성능을 뛰어넘는 결과를 기록했다. 특히 풀기(disentanglement) 작업에서는 성공률이 75%로, 기존 기술(26%) 대비 약 49%포인트나 높았다. 실제 환경에서도 90% 이상의 성공률을 달성했으며, 양방향 꼬임 풀기 같은 어려운 작업에서도 기존보다 25% 높은 성과를 보여 기술의 실용성을 입증했다.

KAIST 박대형 전산학과 교수팀이 개발한 로봇 팔의 모습. 고무링을 홈에 정확히 끼우거나, 꼬인 고무줄도 풀어낼 수 있다. AI학습을 통해 고무줄이나 옷처럼 움직이면 모양이 변하는 물체의 생김새도 로봇이 파악할 수 있게된 것이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KAIST

제1 저자인 송민석 연구원은 “이번 연구는 로봇이 불완전한 정보만으로도 변형 물체의 전체 모습을 이해하고 복잡한 조작을 수행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며 “제조, 물류,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과 협력하거나 인간을 대신해 정교한 작업을 수행하는 로봇 기술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팀은 앞으로 INR-DOM 기술을 실제 산업 현장에 접목해, 케이블 조립과 의류 정리, 포장 등 자동화가 절실한 분야에 응용할 수 있도록 발전시킬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