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m 거인 전사' 3800년 전 무덤서 출토
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코카서스 지역, 아제르바이잔 서부에서 약 3800년 전 거대한 전사의 유골이 발견됐다.
키 2미터에 달하는 이 인물은 청동제 네 갈래 창을 손에 쥔 채로 묻혀 있었으며, 고급 도기와 장신구, 조리된 동물 뼈 등도 함께 출토돼 당시 복잡한 장례 문화를 짐작케 한다.
이번 발굴은 아제르바이잔 국립과학아카데미(AMEA) 소속 고고학팀이 진행했으며, 무덤은 직경 28m, 높이 2m에 이르는 대형 봉토 구조의 고분(쿠르간)으로 확인됐다. 발굴된 유물의 정교함과 구조적 배치는 이 인물이 단순한 전사가 아닌, 지역 사회의 지도자급 존재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 희귀한 청동 무기와 부장품, 복잡한 장례 구조 드러나
과학매체 라이브사이언스(Live Science)에 따르면, 무덤 내부는 세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었고, 전사의 유해는 그 중심 묘실에 안치돼 있었다. 나머지 한 구역에는 정교한 도기 항아리들이 배치돼 있었으며, 또 다른 방은 비어 있었다. 연구진은 이러한 구조가 사후 세계를 향한 고대인의 믿음과 상징 체계를 반영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특히 전사의 손에 들린 청동제 무기는 날끝이 네 갈래로 갈라진 형태로, 남코카서스 지역에서 극히 드물게 발견되는 희귀한 유물이다. 함께 출토된 유리 구슬, 흑요석 도구, 청동 발목 장식 등은 고위 계층의 부장품으로 해석된다. 또 도기 항아리 안에서는 산양, 소, 말, 멧돼지 등 다양한 동물의 뼈가 발견됐고, 일부는 조리된 흔적까지 남아 있어 ‘내세의 식사’ 개념에 따라 의도적으로 함께 묻힌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유골과 함께 배치된 무기와 장신구, 도기, 음식물은 단순한 매장을 넘어, 복잡한 의례 문화와 위계 구조가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다. 도기의 문양도 점묘, 압인, 상감 등 여러 공정을 통해 장식돼 있어 제작 기술과 예술적 수준 역시 상당했음을 짐작게 한다.
◆ 황소 석상과 대형 석재…‘지도자급 전사’의 상징
묘실을 덮은 지표면에서는 무게 1톤에 달하는 석재 14점이 짝을 이루며 배치돼 있었고, 그 위에는 황소 형상의 석상이 놓여 있었다. 고대 사회에서 황소는 힘과 지배를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졌으며, 이 구조는 단순한 매장이 아니라 일종의 기념비적 성격을 갖는 장례 시설로 해석된다.
전사의 자세와 무기 배치, 고분 구조, 석상 등 여러 단서를 종합할 때, 이 인물은 단순한 병사가 아니라 지역 군장이나 상징적 존재로 추앙받던 지도자급 전사였을 가능성이 크다.
연구팀은 이 무덤이 해당 지역에서 유례없는 수준의 장례 구조와 상징 체계를 보여주는 만큼, 고대 남코카서스 문명의 계층 구조와 장례 의식을 밝히는 열쇠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 유골에 대한 방사성탄소 연대 측정과 동위원소 분석이 진행 중이며, 분석 결과는 향후 국제 학술지에 게재될 예정이다. 또한 발굴된 유물과 자료는 사진과 도면, 해설을 포함한 과학 전문 서적으로 출간될 계획이다. 연구진은 향후 이 전사의 식습관, 활동 영역, 건강 상태, 사망 원인 등도 규명해나갈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