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난화로 녹아내리는 빙하, 잠자는 화산 깨우나?
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되면서, 고산지대와 고위도 지역의 빙하 융해는 더 이상 해수면 상승만의 문제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최근 칠레 남부의 화산과 빙하를 조사한 새로운 연구는 충격적인 사실을 밝혀냈다. 빙하가 녹으면 전 세계적으로 화산 폭발이 유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 결과는 최근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지구화학 분야의 권위 있는 학술회의인 골드슈미트 국제회의(Goldschmidt Conference)에서 발표됐다.
◆ 빙하의 압력은 화산 활동의 숨겨진 '억제제'
사실 빙하 융해가 화산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은 1970년대부터 제기됐다. 그 원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빙하의 거대한 무게는 지각과 맨틀에 지속적으로 하향 압력을 가한다. 이 압력이 사라지면, 지하의 가스와 마그마가 팽창하면서 압력이 높아져 폭발적인 분화를 일으킬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 이 이론의 핵심이다.
2002년 연구에서는 약 1만 년 전 마지막 빙하기 말기, 아이슬란드의 빙하가 후퇴하자 화산 분화 빈도가 이전보다 30~50배나 높아졌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빙하와 화산 활동 간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다.
하지만 대륙 화산 시스템에서 빙하와 화산의 관계는 아직 충분히 연구되지 않은 부분이었다. 이에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매디슨 캠퍼스의 대학원생, 파블로 모레노 예거(Pablo Moreno Jaeger) 연구팀은 칠레 남부 모초-초슈엔코 화산을 포함한 6개 화산을 대상으로, 수천 년 전 파타고니아 빙상 융해와 화산 반응을 조사했다.
연구팀은 화산 분출 시 방사성 동위원소인 아르곤의 붕괴를 일종의 '화산 시계'로 활용하고, 분화 용암 내부에서 형성된 결정을 분석하여 화산 활동과 빙하 융해의 연관성을 추적했다.
그 결과, 마지막 빙하기 절정기(약 2만 6천 년~1만 8천 년 전)에는 파타고니아 빙상이 분화 규모를 억제하고 지표면 아래에 거대한 마그마 덩어리를 형성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파타고니아 빙상이 융해되자 마그마 덩어리 내 압력이 높아져 결국 모초-초슈엔코 화산이 형성되었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예거(Jaeger) 연구원은 "빙하는 그 아래에 있는 화산의 분화량을 억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빙하가 후퇴함에 따라, 이러한 화산들은 더 자주, 더 폭발적으로 분화할 수 있음을 우리 연구 결과가 시사한다"고 강조했다.
◆ 악순환의 시작: 빙하 융해와 화산 활동의 연쇄 반응
2020년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245개의 잠재적 활화산이 빙하 아래 5km 이내에 위치하고 있어, 빙하 융해로 인한 화산 폭발 증가는 전 세계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 특히 연구팀은 북미, 뉴질랜드, 러시아 등을 우려 지역으로 꼽았다.
화산이 폭발하면 단기적으로는 분출된 황산염 에어로졸이 태양광을 반사하여 지구를 냉각시킬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분출되는 온실가스의 영향으로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예거(Jaeger) 연구원은 "여러 차례의 분출로 인한 누적된 영향은 온실가스 축적을 통해 장기적인 지구 온난화에 기여할 수 있다. 이는 녹아내리는 빙하가 분출을 유발하고, 그 분출이 다시 온난화와 빙하 융해를 촉진하는 악순환을 형성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