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이 썩지 않는 과학적인 이유는?

2025-07-09     김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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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온 꿀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질되지 않고 그 형태를 유지하는 몇 안 되는 식품으로 알려져 왔다.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수천 년 된 꿀단지 속 꿀이 여전히 먹을 수 있는 상태였다는 이야기는 이제 전설이 아닌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꿀은 어떻게 '썩지 않는' 마법 같은 특성을 가질 수 있을까? 

◆ 꿀이 썩지 않는 신비: 꿀벌들이 만들어낸 '천연 방부제'의 비밀

대부분의 식품에는 소량의 세균, 진균, 곰팡이 등 미생물이 존재한다. 이러한 미생물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증식하여 음식 성분을 분해하고 냄새를 발생시키거나 외관을 변화시키는 것이 바로 '썩거나 상한' 상태다.

세균, 진균, 곰팡이 등 미생물은 습하고 다소 높지만 너무 높지 않은 온도, 온화한 pH, 그리고 대사에 이용할 수 있는 충분한 산소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냉장, 건조, 염장, 가열 등은 미생물의 활동을 억제하여 식품이 상하는 것을 막고 장기간 보존하는 방법이다.

밀봉된 병에 담긴 식품은 개봉하지 않은 상태로 올바른 온도에서 보관하면 세균, 진균, 곰팡이의 번식을 억제할 수 있다. 그러나 일단 병을 개봉하면 공기에 노출되어 세균이 증가하거나, 병 안이 습기에 노출되거나, 식품을 덜어내기 위해 사용한 스푼에서 새로운 세균이 옮겨져 내용물이 오래가지 못한다. 반면, 예외적으로 거의 썩지 않는 식품 중 하나가 꿀이다.

꿀은 따뜻하고 수분을 포함한 당분이 많은 액체이므로, 박테리아가 선호할 만한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꿀벌이 꿀을 벌집으로 운반하는 과정에서 꿀을 농축하고 수분 일부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효소를 사용하여 액체의 산성도를 높여 일부 미생물의 증식을 억제한다.

◆ 꿀벌의 정교한 농축 과정과 항균 메커니즘

2022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프리토리아 대학교에서 곤충학을 연구하는 수잔 W. 니콜슨(Susan W. Nicholson) 외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꿀벌이 꽃에서 운반하는 꿀의 당도는 꽃의 꿀에 비해 약 2배인 것으로 밝혀졌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Scientific Reports(2022)

니콜슨 연구원은 꿀벌이 비행 시 에너지 비용을 크게 절감하기 위해 운반 중인 꿀의 수분 함량의 최대 75%를 제거하여 꿀의 무게를 줄인다고 설명한다.

원래 꿀의 수분량은 약 70~80%지만, 꿀벌에 의해 수분량이 약 15~18%까지 농축된 꿀 속에서는 풍부한 당분을 원하는 미생물이 활동할 수 없다. 또한 꽃에서 벌집으로 운반될 때 꿀의 산성도도 높아지므로 미생물이 생존할 수 없다. 게다가, 벌집에서 채취한 꿀을 병에 밀봉하는 것 역시 미생물 증식을 막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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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분을 감소시켜 미생물 활동을 억제하는 것은 식품 과학자들 사이에서 '낮은 수분 활성도(Low water activity)'라고 불리는 상태로, 드라이프루트나 육포 같은 건조 식품 외에 소금이 물을 끌어당겨 미생물이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염장'도 마찬가지다. 

꿀의 경우, 꿀벌이 꽃의 꿀을 운반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낮은 수분 활성도를 만들기 때문에 거의 썩지 않는 식품이 된다. 다만, 충분한 수분량이 유입되거나 새로운 미생물이 증가하면 썩기 쉬워지므로, 뚜껑을 열어 공기에 노출시키거나 한 번 맛본 스푼을 병에 넣으면 썩을 위험성이 크게 높아진다.

◆ 낮은 수분 활성도와 유산균, 그리고 의학적 활용 가능성

개봉하면 밀폐 상태보다 썩기 쉬워지지만, 그럼에도 꿀은 다른 식품보다 썩기 어려운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 원인으로는 낮은 수분 활성도 외에도 '유산균'이 있다. 

스웨덴 룬드 대학교의 의료 미생물학 연구팀이 2014년에 발표한 논문에서는 전 세계의 신선한 꿀에 독특한 유산균이 대량으로 존재하며, 그 유산균이 강력한 항균 활성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제시됐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International Wound Journal(2014)

꿀에는 당분과 풍부한 비타민, 미네랄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파이토뉴트리언트(Phytonutrients)'라고 불리는 식물 유래 생리 활성 화학 물질도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또한, 꿀은 낮은 수분 활성도로 인해 잡균이 번식하기 어렵고 항균 작용과 항미생물 작용이 존재하기 때문에, 상처나 화상 치료에 사용되는 '의료용 꿀'이라는 것도 존재한다.

공공 의료 네트워크인 UCLA Health에 따르면, 꿀을 상처에 바르면 세균 증식을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낮은 수분의 꿀은 상처 부위의 미생물로부터 수분을 빼앗아 활동을 억제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복잡한 효소 상호작용을 통해 미생물에 손상을 입히고, 상처를 보호하는 장벽처럼 작용한다고 한다. 

다만, 의료용 꿀은 안전성과 유효성을 고려하여 배합, 가공된 무균 제품이며, 시판 꿀은 상처 관리에 적합하지 않은 성분이 포함되어 있거나 미생물이 어느 정도 번식했을 수도 있으므로, 전용 꿀 이외에는 상처에 사용하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