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천 년 전 터키…DNA가 밝힌 ‘여성 중심’ 사회
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9천 년 전 터키 신석기 도시 차탈회위크(Çatalhöyük)가 여성 중심 사회였음을 보여주는 새로운 유전학적 증거가 공개됐다. 최근 고대 유골 DNA 분석을 통해, 이 농경 정착지에서 여성과 그 혈통이 사회 조직의 핵심 축을 이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번 연구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게재됐다.
◆ 유골 속 DNA가 밝힌 여성 중심 사회의 실체
차탈회위크는 기원전 7100년경 건설돼 약 1,000년간 유지된 고대 도시로, 현재 터키 중남부 지역에 위치해 있다. 13.2헥타르에 달하는 이 정착지는 집 지붕을 통해 출입하고, 집 내부 바닥 아래에 시신을 매장하며, 정교한 벽화와 여성 조각상 등으로 주목받아 왔다.
1960년대 초 이곳을 처음 발굴한 고고학자 제임스 멜라아트(James Mellaart)는 여성 인형의 존재를 근거로 모계 사회였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후 스탠포드대 고고학자 이언 호더(Ian Hodder)는 남녀 간 뚜렷한 사회적 차이가 없는 평등 사회였다는 반론을 제시하며 논쟁이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터키 중동기술대 메흐멧 소멜(Mehmet Somel) 교수와 호더 교수를 포함한 국제 연구팀은 기원전 7100~5800년 사이 집 바닥에 매장된 131구 유골의 DNA를 정밀 분석했다. 그 결과, 31개 건물에서 수집된 유골 중 1차 친족(부모·자녀·형제자매)은 동일 건물에, 2·3차 친족은 인접한 건물에 매장돼 있어 가족 단위의 거주 구조가 드러났다.
특히 세대 간 유전적 연결이 모계 혈통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 확인됐다. 연구팀은 이는 당시 사회에서 여성과 그 후손이 중심 역할을 담당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라고 평가했다.
◆ 고정관념을 뒤흔든 신석기 사회
고대 DNA 분석은 생후 얼마 안 된 유아의 성별 확인도 가능하게 했다. 이 과정에서 여자 아기에게 더 많은 매장 유물이 제공되는 경향이 나타나, 상징적·문화적으로 여성에 대한 중요성이 더 크게 인식되었음을 시사한다.
소멜 교수는 "우리는 건물 내에서 모계 혈통 연결을 찾으려 했던 것이 아니다"라며, "그러나 이 결과는 남성 중심 가족 구조가 인류 보편적이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밝혔다. 그는 또 "차탈회위크는 식량 생산 사회에서 유전적으로 확인된 가장 오래된 사회 조직 패턴을 보여주며, 그것은 여성 중심적이었다"고 말했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독일 고고학자 옌스 노트로프(Jens Notroff)는 이 연구가 "지속적으로 모계적으로 조직된 신석기 공동체에 대한 첫 체계적 증거"라고 평가했다. 반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벤자민 아버클(Benjamin Arbuckle) 교수는 "만약 이 DNA 패턴이 남성 중심적인 것이었다면, 우리는 즉각 권력 구조의 존재를 받아들였을 것"이라며, "여성 권력이 작동하는 사회를 상상하는 데 많은 학자들이 여전히 어려움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소멜 교수는 '모계(matrilineal)'라는 표현 대신, 보다 포괄적인 '여성 중심적(female-centered)'이라는 용어를 선택했다. 이는 단순한 혈통 구성을 넘어 여성이 중심이 되는 사회 구조였음을 함의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연구는 신석기 유럽에서 흔히 보이는 부계 중심 사회와 차탈회위크를 비교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며, 사회 조직의 진화 과정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연구팀은 앞으로 이보다 더 이른 시기의 인근 지역 유적들에서도 유사한 분석을 이어갈 계획이다. 차탈회위크가 예외였는지, 혹은 여성 중심 사회가 더 보편적이었는지를 밝히는 것이 다음 과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