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 역설적으로 '더 지루해지는' 사람들
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스마트폰, 소셜 미디어, 넷플릭스 등 손안의 무한한 디지털 콘텐츠는 우리를 영원히 지루함에서 해방시켜줄 것 같았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최근 연구 결과들은 이 기대와 정반대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오히려 점점 더 지루함을 느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디지털 시대의 역설'이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 디지털 세상 속, 더 깊어지는 지루함의 늪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 신테시스(Nature Synthesis)'에 발표된 연구는 지난 50년간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이 느끼는 지루함이 증가하고 있다는 증거를 제시한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 연구팀은 다양한 데이터를 분석해 현대 사회에서 지루함이 단순한 개인의 감정을 넘어 사회 전반에 걸친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 결과는 "끝없는 디지털 미디어가 지루함을 영원히 없애줄 것이라 예상했지만,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 디지털 시대, 지루함은 왜 커질까?
그렇다면 왜 우리는 넘쳐나는 정보와 엔터테인먼트 속에서 더 지루해지는 것일까? 여러 가지 분석이 가능하다.
1. 즉각적인 만족의 역설: 디지털 콘텐츠는 즉각적인 만족을 제공한다. 지루함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손쉽게 새로운 자극을 찾는다. 하지만 이러한 빠른 전환은 깊이 있는 몰입을 방해하고, 오히려 뇌가 지속적인 만족감을 얻는 능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마치 단 맛에 길들여진 혀가 밍밍한 맛을 견디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2. 주의력 분산과 피로: 끊임없이 쏟아지는 알림, 새로운 게시물, 추천 콘텐츠 등은 우리의 주의력을 산만하게 만들고 정신적 피로를 유발한다. 너무 많은 정보와 선택지 앞에서 우리의 뇌는 오히려 에너지를 소모하며 지루함이라는 감정을 통해 휴식을 요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3. 의미 상실과 연결성 부족: 디지털 연결이 아무리 확대되어도, 표면적인 상호작용은 진정한 의미나 깊은 연결감을 제공하지 못할 수 있다. 오프라인에서의 진정한 사회적 활동이나, 몰입을 요구하는 취미 활동이 줄어들면서, 사람들은 내면의 공허함과 무의미함에서 오는 지루함을 더 크게 느낀다는 분석도 나온다.
◆ 지루함, 단순히 나쁜 것만은 아니다
지루함이 불편한 감정인 것은 분명하지만, 심리학자들은 지루함이 창의성과 자기 성찰의 중요한 동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즉각적인 자극에서 벗어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뇌가 휴식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를 제공한다.
어쩌면 디지털 시대의 '더 큰 지루함'은 우리가 기술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되돌아볼 기회를 제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한한 콘텐츠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 더 중요해지는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