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의 '고대 설계도', 말미잘에서 찾았다
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좌우 대칭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처럼 당연하게 여겨지는 몸의 형태가 사실은 6억 년 전, 말미잘 같은 단순한 생물에서 비롯됐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오스트리아 빈 대학 연구팀은 말미잘의 유전체에서 인간과 유사한 'Hox 유전자 클러스터'를 발견했으며, 이 유전자가 우리 몸의 구조를 설계하는 청사진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동물 진화의 중요한 연결고리를 제시한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게재됐다.
◆ 말미잘도 가진 좌우 대칭의 유전자 청사진
동물의 몸을 설계하는 핵심 유전자인 Hox 유전자는 배아 발달 과정에서 머리와 꼬리, 등과 배 같은 신체 축을 결정하고, 각 부위의 위치와 기능을 지시하는 역할을 한다. 생물학자들은 그동안 이 유전자가 좌우 대칭 동물(bilaterian)의 출현과 함께 진화했다고 추정해 왔다.
하지만 방사형 대칭을 가진 말미잘에서도 인간과 거의 동일한 순서로 배열된 Hox 유전자 클러스터가 발견되면서, 이 유전자가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왔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연구팀은 이 유전자가 동물 진화의 초기 단계부터 이미 정교하게 조직화돼 있었다고 분석했다.
이는 인간을 비롯한 복잡한 동물의 신체 설계 원리가, 생각보다 훨씬 더 오래전부터 생물 속에 잠재돼 있었음을 의미한다.
◆ 동물 진화 이해의 초석
좌우 대칭은 곤충과 연체동물, 척추동물 등 대부분의 동물이 공유하는 기본적인 몸의 구조다. 말미잘에서 이와 유사한 Hox 유전자가 발견됐다는 것은, 좌우 대칭 구조가 어떻게 진화적으로 형성됐는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연구팀은 "이번 발견은 동물의 몸 형태가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에 대한 기존의 관점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강조한다. 겉보기엔 단순한 말미잘이지만, 그 안에는 수억 년 전부터 이어져온 생명의 유전적 설계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던 셈이다.
이번 연구는 동물의 발생과 진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으며, 향후 더 많은 원시 생물 연구를 통해 생명체의 복잡성과 기원에 대한 비밀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