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밝혀낸 알츠하이머 치료의 열쇠
단서였던 유전자 ‘PHGDH’, 병의 원인이었다
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알츠하이머는 아직까지 원인이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대표적인 퇴행성 뇌 질환이다. 치료 약물은 존재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고 진행 속도를 늦추는 데에도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이런 가운데, 인공지능(AI)이 새로운 단서를 포착했다. 오랫동안 병의 '지표'로만 여겨졌던 특정 유전자가, 실제로 병을 유발하는 핵심 원인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미국 마운트시나이 아이컨 의대 연구팀은 자체 개발한 AI 모델 ‘aiGENE’을 통해 수천 건의 뇌 조직 유전자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PHGDH’ 유전자가 알츠하이머 병리 전반과 깊이 연결돼 있으며, 단순한 표지자(marker)를 넘어 질병 유발 요인일 수 있다는 결정적 증거를 확보했다.
이 연구는 2025년 4월 국제학술지 '셀(Cell)'에 게재됐다.
◆ AI 지목 유전자, PHGDH와 알츠하이머의 연결고리
PHGDH 유전자는 뇌세포 내에서 세린(serine)이라는 아미노산을 합성하는 역할을 한다. 이전에도 알츠하이머 환자 뇌에서 이 유전자의 활성이 높게 나타난다는 보고는 있었지만, 이는 결과인지, 원인인지 명확하지 않았다.
연구팀은 5개 지역에서 수집한 대규모 뇌 조직 샘플을 AI로 분석한 결과, PHGDH의 과도한 발현이 알츠하이머의 초기부터 후반까지 지속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밝혀냈다.
이를 생쥐 실험으로 확인한 결과, PHGDH 유전자가 과발현된 개체에서는 신경세포의 사멸과 병리적 단백질 축적이 함께 나타났으며, 이는 알츠하이머의 핵심 증상과 정확히 일치했다.
연구를 주도한 후이 게(Hui Ge) 교수는 "PHGDH는 단순히 병의 징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병의 방향 자체를 바꾸는 인자일 수 있다"며, AI 기반 분석과 실험 결과가 맞아떨어졌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했다.
◆ 지표에서 치료 타깃으로…바뀌는 접근법
PHGDH는 세린 합성과 직접 관련돼 있다. 연구팀은 이 유전자가 만들어내는 세린이 병리적 단백질 축적을 유도할 가능성에 주목했고, 실제로 PHGDH 억제제를 활용한 실험에서 세린 농도가 줄며 병의 진행도 완화되는 효과를 확인했다.
하지만 세린은 뇌의 기본 기능 유지에 꼭 필요한 물질이기도 하다. 무작정 억제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연구팀은 병적 상황에서만 작동하는 정밀한 타깃 치료제 개발을 다음 단계로 제시했다. 유전자 조절, RNA 기반 약물, 약물 전달 기술 등을 활용한 맞춤형 전략도 함께 검토 중이다.
이번 연구는 단순히 하나의 유전자를 지목한 데 그치지 않는다. AI가 대규모 유전체 데이터를 통해 병의 원인을 예측하고, 실험으로 그 인과관계를 입증해낸 새로운 방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AI가 단순한 분석을 넘어, 복잡한 질환의 실마리부터 치료 방향까지 제시할 수 있는 도구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