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손가락 주름, 개인 식별 '열쇠' 될까
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오래 물에 담그면 손가락이 쭈글쭈글해지는 것은 흔한 현상이다. 이처럼 익숙한 현상은 단순한 피부 팽창이 아닌, 자율신경계의 능동적 반응이라는 사실이 1930년대 발견된 신경 손상 환자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피부의 땀구멍으로 물이 스며들어 염분 농도가 낮아지면, 자율신경계는 손가락 끝의 미세 혈관들을 수축시키는 신호를 보낸다. 혈관 수축으로 손가락 피부의 전체적인 부피가 줄어들면서 마치 수분을 잃은 과일처럼 표면에 독특한 주름 패턴이 나타나는 것이다.
신경에 손상을 입은 경우에는 이러한 신호 전달 체계가 작동하지 않아 물에 오래 담가도 손가락에 주름이 생기지 않는다. 흥미롭게도, 물에 젖은 손가락에 주름이 생기는 진화적인 이유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젖은 환경에서 물건을 더욱 효과적으로 잡을 수 있도록 마찰력을 증가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가설이 있다.
◆ 개인 고유의 주름 패턴 확인
"물에 불었을 때 생기는 손가락 주름은 매번 똑같은 모양으로 생길까?"라는 한 학생의 순수한 질문은 미국 빙햄튼대 생체 의학 공학 부교수인 가이 저먼(Guy K. German) 박사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새로운 연구의 발단이 되었다.
저먼 박사 연구팀은 손가락 주름 형성에 관여하는 혈관의 미세 구조가 손가락 내부에서 변함없이 유지된다는 점에 주목하고, 물에 젖었을 때 나타나는 주름의 패턴 역시 매번 유사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실험에서 연구팀은 세 명의 피험자를 대상으로 진행했다. 피험자들의 손가락을 30분 동안 물에 담근 후 나타난 주름 패턴을 고해상도 카메라로 정밀하게 촬영하고, 하루 뒤 동일 조건으로 실험을 반복한 뒤 결과를 컴퓨터 분석을 통해 비교했다.
놀랍게도 실험 결과, 모든 피험자에게서 두 번의 실험 모두 매우 유사한 형태의 손가락 주름 패턴이 확인되었다.
이는 물에 젖었을 때 형성되는 손가락 표면의 지형적인 주름 패턴이 마치 개인의 고유한 지문처럼 재현 가능하며, 시간이 지나도 일관되게 유지된다는 것을 시사하는 중요한 발견이다.
특히 손가락에 신경 손상을 가진 학생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예상대로 물에 담가도 주름이 전혀 나타나지 않아, 손가락 주름 형성에 자율신경계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생체 재료의 기계적 행동 저널(Journal of the Mechanical behavior of Biomedical Materials)’에 게재됐다.
◆ 법의학적 응용 가능성
이번 연구 결과는 단순한 과학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을 넘어, 법의학 분야에 혁신적인 응용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개인마다 고유하고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손가락 주름 패턴은 범죄 현장에서 채취되는 지문의 식별뿐만 아니라, 장기간 물에 노출되어 일반적인 지문 채취가 어려운 익사체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에도 새로운 단서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이 연구를 주도한 가이 저먼 박사의 아버지는 은퇴한 경찰관으로, 과거 수사 과정에서 익사체 신원 확인의 어려움을 직접 경험한 바 있다고 한다.
저먼 박사는 "원래부터 생체 인식이나 개인 식별 같은 분야에 큰 흥미를 느껴왔다. 이번 연구를 통해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적인 신체의 변화 속에도 놀라운 과학적 원리가 숨어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앞으로 젖은 손가락 주름 연구가 법의학 분야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