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에서 자라는 내 치아…재생치 시대 열린다

2025-05-15     김정은 기자
킹스칼리지런던 연구진이 실험실에서 배양된 치아 조직을 들고 있는 모습. 환자 자신의 세포로 배양한 '진짜 이'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King’s College London

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충치나 불의의 사고로 소중한 치아를 잃었다면, 우리는 보통 임플란트나 금속 보철물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들은 결국 인공적인 대체재일 뿐, 시간이 지나면서 잇몸과의 이탈, 염증, 심지어 통증과 같은 불편함을 야기할 수 있다. 마치 내 몸의 일부가 아닌 어색함은 어쩔 수 없는 숙명처럼 여겨져 왔다. 

그런데 최근, 놀라운 연구 결과가 발표되며 이러한 인공 치아의 시대에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바로 우리 자신의 세포를 이용해 실험실에서 '진짜 치아'를 길러내고, 나아가 입안에서 직접 자라게 하는 기술이 한 걸음 더 현실로 다가왔다는 소식이다.

◆ 실험실에서 자라는 '진짜 이'…세포 맞춤형 하이드로겔이 핵심

이 획기적인 연구는 영국 킹스칼리지런던(King's College London)의 슈에첸 챈(Xuechen Chen) 박사 연구팀이 수행했으며, 국제학술지 'ACS Macro Letters'에 그 성과가 발표됐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ACS Macro Letters

연구팀은 손상된 치아를 대체할 수 있는 '치아 오가노이드(tooth organoids)'—즉, 미니 치아 구조체—를 실험실 환경에서 배양하는 데 성공했다. 

이 성과를 가능케 한 중심에는 연구팀이 새롭게 개발한 '생체직교적 교차결합 하이드로겔(Bioorthogonally Cross-Linked Hydrogels)'이라는 특별한 젤이 있었다.

치아는 단순히 뼈처럼 단단한 물질이 아니다. 겉면의 법랑질부터 안쪽의 상아질, 그리고 잇몸과 만나는 시멘트질까지 다양한 층으로 이루어진 복합 구조다. 

이런 복잡한 조직을 실험실에서 성장시키려면, 세포들이 서로 주고받는 신호를 정밀하게 조절해줄 환경이 필요하다. 기존의 생체재료인 콜라겐이나 '마트리겔(Matrigel)'은 이런 정교한 조절이 어렵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번에 개발된 하이드로겔은 젤라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세포 주변 환경을 섬세하게 설계할 수 있도록 농도와 조성을 조절할 수 있다. 

특히 이 젤은 세포 내부의 중요한 화학 반응에 영향을 거의 주지 않으면서, 필요한 신호를 시간차를 두고 천천히 방출하는 방식으로 세포 간 소통을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챈 박사는 "기존 연구는 모든 신호를 한꺼번에 쏟아부어 세포가 혼란스러워했지만, 이 젤은 마치 시계처럼 신호를 조율해 세포들이 질서 있게 반응할 수 있게 돕는다"고 설명했다.

◆ 임플란트를 넘어, 내 치아로…재생치의 밝은 미래

연구팀의 목표는 환자의 세포를 활용해 법랑질, 상아질, 시멘트질 등 치아를 구성하는 조직을 체외에서 완전히 재현하거나, 치아가 없는 부위에 이식해 입안에서 직접 치아를 재생시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실험에서는 실험실에서 배양된 미니 치아 구조체가 자연 치아와 유사한 초기 형태를 보였으며, 이는 향후 치과 치료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킹스칼리지런던의 슈에첸 챈 박사(왼쪽)와 아나 안젤로바 볼포니 박사(오른쪽)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King’s College London

공동연구자인 아나 안젤로바 볼포니(Ana Angelova Volponi) 박사는 "재생 치아 기술은 단순히 인공 보철을 대체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 몸의 조직으로 진짜 치아를 다시 만들어내는 지속 가능하고 생물학적인 복원 방법"이라며, "치과 치료의 미래를 근본부터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공 보철이 아닌, 내 세포로 만들어진 맞춤형 '진짜 이'를 되찾는 꿈이 서서히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번 연구는 인간의 세포로부터 완전한 치아 조직을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했으며, 재생의학과 치의학의 융합이라는 측면에서도 큰 전환점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