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상어는 왜 인간에게 몸을 맡겼을까?

기생충을 떼는 손길, 기억한 듯 다가오는 바다의 거인

2025-05-07     김정은 기자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Unsplash

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바다를 유영하던 고래상어가 멈춰 섰다. 다가온 건 잠수복을 입은 인간 한 명, 손엔 작은 도구 하나. 단지 ‘기생충을 떼주기 위해’ 다가왔을 뿐인데, 상어는 마치 그것을 기다린 듯 몸을 맡긴다.

서호주대학교(University of Western Australia, UWA) 연구팀은 지난 10년 가까이 호주 닝갈루 리프(Ningaloo Reef) 근해에 서식하는 고래상어 72마리의 피부에서 기생 요각류(copepod)를 채집해왔다. 그 과정에서 일부 고래상어가 연구자의 접근에 점점 익숙해지며, 오히려 협조적인 행동을 보인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Fishes》에 발표됐다.

◆ "처음엔 조심스러웠지만, 이제는 멈춰 서 줍니다"

초기에는 다이버들이 조심스럽게 다가가 기생충을 긁어냈지만, 반복된 관찰 끝에 일부 고래상어는 수영 속도를 줄이거나 완전히 멈추고, 민감한 부위까지 노출하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 연구팀은 "기생충을 제거하면 피부 자극이 줄고, 헤엄치기도 더 편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상어 몸에 붙은 기생 요각류는 눈 주위나 지느러미 근처처럼 다른 물고기나 청소 생물이 닿기 어려운 곳에 집중돼 있었다. 연구자들은 작은 플라스틱 칼로 이 기생충을 긁어 채집했으며, 이 작업이 반복될수록 상어가 먼저 다가오는 경우도 늘었다.

"우리가 일종의 '청소 생물'처럼 여겨지는 것 같았어요." 연구를 이끈 브렌던 오소리오(Brendon Osorio) 박사는 이렇게 전했다.

마크 미칸 박사가 고래상어 입 주변에서 기생 요각류를 채집하고 있는 장면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Violeta J Brosig(Blue Media Exmouth)

이처럼 고래상어는 인간을 위협적인 존재가 아닌, 이로운 상호작용의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연구팀은 일부 개체가 동일한 다이버와 여러 차례 접촉한 경험을 기억하고, 이후에도 비슷한 반응을 보인 점에 주목했다. 이는 단순한 반사행동을 넘어 고래상어가 특정 상황을 학습하거나 기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 기생충이 말해주는 고래상어의 '식단 기록'

단순한 기생충 제거로 끝나지 않았다. 이 작은 생물들은 상어의 식단 정보를 오롯이 간직한 '생체 기록 장치'였다.

고래상어 피부에서 채집한 기생 요각류 샘플을 분석을 위해 보관하는 모습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 Andre Rerekura(AIMS)

고래상어는 드물게 관찰되며, 종종 깊은 바다나 야간에 먹이를 섭취하기 때문에 직접적인 식단 파악이 어렵다. 이에 따라 연구팀은 피부 조직과 기생 요각류에서 탄소와 질소 동위원소를 분석했고, 그 중 질소 조성이 고래상어의 장기적인 식습관을 정밀하게 반영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오소리오 연구원은 "기생충의 질소 조성은 고래상어의 식단을 시간적·공간적으로 통합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라며 "조직 생검보다 비침습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UWA 해양연구소의 마크 미칸(Mark Meekan) 박사도 "기후 변화나 해양 오염 등으로 고래상어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이 같은 분석은 보전 전략 수립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