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 속 잠든 스키, 1300년 만에 깨어나다
바인딩까지 보존된 세계 유일 고대 스키, 노르웨이 빙하에서 발견
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지금으로부터 1300년 전, 노르웨이 고산 지대에 남겨진 스키 한 쌍이 있었다. 오랜 세월 빙하 속에 잠들어 있던 유물은 2021년, 얼음이 녹으며 마침내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 스키는 지금까지 확인된 고대 유물 중에서도 가장 온전하게 보존된 한 쌍으로, 인간이 극한의 자연 환경에 어떻게 적응했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고고학적 단서다.
기술과 생활 방식은 물론, 당시 사람들의 이동 방식과 자연에 대한 이해, 그리고 손으로 빚어낸 도구의 정교함까지 생생하게 전한다. 두 스키에는 바인딩과 손질 자국, 사용과 수리의 흔적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어 1300년 전의 시간을 오늘로 이어준다.
◆ 7년을 기다린 짝, 마침내 발견되다
2014년, 디게르바르덴 빙하에서 첫 번째 스키가 발견됐다. 바인딩까지 남아 있던 이 유물은 보기 드문 완전한 상태였지만, 짝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후 연구팀은 7년 동안 빙하의 변화를 지켜보았고 2021년 위성 사진을 통해 얼음이 크게 줄어든 것을 확인한 뒤 다시 현장을 찾았다. 그리고 첫 스키가 발견된 지점에서 불과 5미터 떨어진 자리에서 두 번째 스키가 드러났다.
새로 나온 스키는 길이 187cm, 너비 17cm로, 앞서 발견된 것보다 크고 보존 상태도 더 뛰어났다. 스키 바닥에 깊게 파인 홈은 과거처럼 동물 털을 붙여 쓰던 방식이 아님을 보여주는 결정적 단서였다.
바인딩은 자작나무 끈과 가죽, 나무 마개로 구성돼 있었으며, 앞부분에는 로프를 끼울 수 있도록 만든 구멍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연구팀은 "두 스키는 수작업으로 제작됐기 때문에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확실히 함께 사용된 한 쌍이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뒷부분에는 수리 흔적이 있었고, 함께 발견된 가죽 부속 덕분에 복원 가능성도 높다.
◆ 사냥꾼의 도구였을까, 산을 넘는 여정의 흔적이었을까
스키 주변에서는 순록 사냥에 쓰인 유물이 함께 출토됐다. 하지만 이 일대에는 고대 산길을 알리는 돌탑도 남아 있어 스키가 사냥용 도구였는지, 아니면 험한 산길을 오가던 여행자의 장비였는지는 알 수 없다. 2016년 같은 지역에서 18세기 썰매가 발견된 점은 이 일대가 수백 년간 교통로로 활용됐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 스키는 왜 그 자리에 남겨졌을까.
단지 눈이 많이 내린 날이었다면 스키를 눈 위에 세워두고 다시 찾으러 왔을 것이다. 하지만 바인딩이 부러진 채 발견됐고, 스키를 끌 수 있는 구조가 있음에도 방치된 점에서 실족이나 사고로 인해 회수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번 발굴은 2025년 4월 4일, 콜럼비아대학교 기후학교(Columbia Climate School) 공식 뉴스 페이지를 통해 소개됐다. 발굴을 이끈 라르스 필뢰(Lars Pilø)와 에스펜 핀스타드(Espen Finstad)는 현장 기록과 사진을 통해 발견 당시의 상황을 상세히 전했다.
노르웨이 고고학계는 이 유물을 "현존하는 고대 스키 중 가장 완전하게 보존된 한 쌍"으로 평가하며, 빙하가 더 녹아내릴수록 또 다른 유물이 세상 밖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도 높다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