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부족, '음모론' 빠지는 심리적 허점 될 수도

수면 부족과 음모론: 정신적 취약성을 키우는 연결고리 수면 질 저하가 음모론 신뢰도에 미치는 영향 확인

2025-04-14     김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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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잠을 잘 자지 못한 날, 온갖 걱정과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런 수면의 질 저하가 단순한 피로감 이상의 영향을 줄 수 있으며, 특히 음모론적 사고에 빠질 수 있는 심리적 허점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영국 노팅엄대학교의 심리학자 다니엘 졸리(Daniel Jolley) 교수팀은 수면 문제와 음모론적 신념 간의 연관성을 실험적으로 검증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 논문은 국제 학술지 ‘건강심리학 저널(Journal of Health Psychology)’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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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은 두 차례의 실험을 통해 수면의 질이 사람들의 인지적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했다.

첫 번째 실험에서는 540명의 참가자가 수면 상태를 평가받은 뒤, 이들에게 2019년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에 대한 음모론적 내용이 담긴 기사와 화재 사고를 사실적으로 설명한 기사를 각각 보여줬다. 그 결과, 수면의 질이 나쁜 사람들은 수면의 질이 좋은 사람들보다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에 대해 고의적인 은폐가 있었음을 암시하는 음모론을 더 믿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두 번째 실험은 575명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수면의 질 외에도 우울감, 망상 수준, 분노와 같은 심리적 요인을 함께 측정했다. 이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우울감’이 수면 부족과 음모론 신념 사이의 연결 고리를 가장 강하게 매개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다시 말해, 수면 부족이 직접적으로 음모론을 유발하기보다는, 수면 부족으로 인해 우울감이 심화되고 그로 인해 음모론적 사고에 더 취약해지는 경향이 드러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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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리 교수는 "수면 부족이 망상적 사고나 불안, 부정적 감정과 연관된다는 것은 기존 연구에서도 밝혀진 바 있다"며, "이런 감정 상태는 실제로 사회적 불신이나 권위에 대한 의심, 이질적인 정보를 수용하려는 태도와 맞물려 음모론을 신뢰하게 되는 배경이 된다"고 설명했다.

흥미로운 점은 연구 결과가 단지 ‘잠을 못 잔 사람은 더 의심이 많아진다’는 단순한 관계를 넘어선다는 데 있다. 연구팀은 이번 분석에서 ‘수면 부족’이 단독 요인이 아니라, 여러 심리·사회적 요인들과 얽혀서 작동하는 퍼즐의 한 조각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수면 문제만으로 누군가가 음모론에 빠진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 연구가 중요한 이유는 음모론이 단지 괴상한 생각으로 그치지 않고 실제 사회적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백신 접종 거부, 기후 변화 부정, 정치적 극단주의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졸리 교수는 "우리의 연구는 수면 건강이 공공의식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며 "불면증 치료나 수면 교육 같은 공중보건 개입이 음모론의 확산을 억제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수면과 관련된 기존 연구들도 이와 유사한 흐름을 뒷받침하고 있다. 예를 들어, 수면 부족은 인지적 유연성을 떨어뜨리고, 감정 조절 능력을 약화시키며, 허위 정보에 대한 판단력을 흐리게 만든다.

이는 사회적 미디어에서 음모론이나 가짜 뉴스가 빠르게 확산되는 구조와도 맞닿아 있다. 반복적으로 피로하고 스트레스가 많은 상태에 놓인 사람일수록 비논리적이더라도 단순하고 강력한 메시지에 더 끌리기 쉽기 때문이다.

또 연구팀은 수면 부족 자체가 원인일 수도 있지만, 더 근본적인 배경에는 ▲만성적인 스트레스 ▲사회적 고립 ▲불안과 같은 복합적인 문제들이 함께 작용하고 있을 가능성도 제시했다. 이런 요소들이 함께 맞물릴 때 음모론은 개인에게 일종의 심리적 탈출구로 기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단순한 인지 편향 분석을 넘어, 심리적·생리적 상태가 어떻게 사회적 신념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입증한 사례로 평가된다. 앞으로는 수면뿐 아니라 전반적인 정신 건강 관리가 건강한 정보 소비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이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