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가 생존 전략? 낙뢰 내성 나무, 알멘드로의 비밀

2025-04-10     김정은 기자
열대우림의 핵심종 '알멘드로' 나무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Evan Gora(Cary Institute of Ecosystem Studies)

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일반적으로 낙뢰는 나무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지만, 열대우림의 '알멘드로(almendro)' 나무는 예외적이다. 이 나무는 번개를 맞고도 생존할 뿐 아니라, 그 영향으로 기생 식물과 인접 경쟁 수목이 제거돼 더욱 유리한 생육 환경을 확보하는 특성을 보인다.

스페인어로 '아몬드'를 뜻하는 '알멘드로'(학명:Dipteryx oleifera)라고 불리며, 파나마와 중남미 여러 나라에 자생하는 열대 수종이다.

미국 캐리 생태계연구소(Cary Institute of Ecosystem Studies)의 에반 고라(Evan Gora) 박사 연구팀은 2014년부터 2019년까지 파나마의 바로 콜로라도 섬(Barro Colorado Island) 열대우림에 설치된 정밀 낙뢰 모니터링 시스템을 통해 94건의 낙뢰를 기록했다. 이후 연구팀은 낙뢰를 맞은 나무와 주변 환경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수년간 추적 관찰했다.

논문은 식물학 분야 국제학술지 'New Phytologist'에 게재됐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New Phytologist

이 연구에 따르면, 알멘드로 나무 9그루는 번개에 직접 맞았음에도 모두 살아남았으며 일부 잎이 떨어지는 정도의 경미한 손상 외에는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다. 반면, 같은 높이의 다른 나무들은 평균적으로 잎과 가지의 40% 이상을 잃었고, 64%는 2년 이내에 고사했다.

아래 영상은 미국 캐리 생태계연구소가 제작한 것으로, 열대우림 수목이 번개를 견디고 생존에 유리한 조건을 확보하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알멘드로 나무의 생존 전략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기생 덩굴식물인 리아나(liana)를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덩굴들은 나무의 수관을 덮어 빛을 가로막고 성장을 방해하는데, 번개로 전달된 강한 전류가 이들을 감전시켜 제거한다. 실제로 알멘드로 나무에 기생하던 리아나의 78%가 번개를 맞은 후 제거됐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번개 효과가 알멘드로 한 그루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알멘드로에 떨어진 전류는 가지나 덩굴을 타고 주변 나무로 퍼지며, 평균 9.2그루가 감전돼 고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과거 40년간의 나무 고사 데이터를 분석해, 알멘드로 근처에 자라는 나무는 그렇지 않은 나무보다 고사 확률이 48% 더 높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이러한 이점 덕분에 알멘드로 나무는 같은 지역의 다른 나무보다 평균 4미터 더 높이 자랄 수 있으며, 번식을 위한 씨앗 생산량도 최대 14배나 높다고 연구팀은 분석했다.

고라 박사는 "알멘드로는 번개를 맞는 편이 더 나은 나무"라며 "번개 덕분에 기생 식물과 경쟁자들을 제거하고 생존과 번식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2019년 번개를 맞은 알멘드로 나무(왼쪽)와 2년 뒤 모습(오른쪽). 기생 덩굴과 경쟁 나무가 제거돼 생육 환경이 개선됐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Evan Gora(Cary Institute of Ecosystem Studies)

알멘드로가 번개를 견디는 이유는 구조적인 특성에 있다. 연구에 따르면 이 나무는 내부 수관을 통해 물이 매우 효율적으로 흐르기 때문에 전류에 의한 열 발생이 적어 손상이 적다. 또 평균적으로 주변 나무보다 수 미터 높고 수관도 넓어, 다른 나무보다 번개에 맞을 확률이 68% 더 높다는 점도 함께 확인됐다.

알멘드로는 아몬드 향이 나는 씨앗을 생산해 식용으로도 활용되며, 딱딱한 목재는 건축 재료로 사용되는 등 생태적·경제적 가치가 높은 나무다. 특히 건기 동안에는 열대 동물들의 주요 먹이원이기도 해, 파나마 생태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번 연구는 번개가 단순한 재해 요소가 아닌, 특정 수종에게는 오히려 생존 전략이 될 수 있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첫 사례다. 

연구팀은 앞으로 알멘드로 외에도 번개 내성을 가진 수종이 있는지, 이러한 특성이 어떤 생물학적 구조에서 비롯되는지를 추가로 조사할 계획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앞으로 열대 지역의 번개 발생 빈도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이러한 번개 내성 수종에 대한 이해는 생물다양성 보전, 탄소 저장 능력 평가, 그리고 열대림 복원 전략 수립에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