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재발견: 혼자 있는 시간이 주는 심리학적 가치
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고독'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고독이 인간의 정신적·신체적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다양한 연구 결과들이 존재하며, 많은 이들은 고독을 피해야 할 상태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특히 현대 도시사회에서는 자발적으로 고독을 선택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사교성과 사회적 연결을 중시하는 미국조차도 이 같은 흐름에서 예외는 아니다.
미국 미들버리(Middlebury) 대학의 심리학자 버지니아 토마스(Virginia Thomas) 박사는 이러한 변화에 주목한다. 그는 고독에 대한 기존의 부정적 편견을 재고하고, 고독이 개인에게 줄 수 있는 심리적 이점에 대해 호주 온라인 학술매체 '더 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을 통해 설명했다.
◆ 고독은 불행의 동의어가 아니다
지난 몇 년간 여러 전문가들은 미국 사회에서 혼자 지내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 왔다. 집 안에 틀어박혀 혼자 시간을 보내거나, 혼자 식사를 하고, 홀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는 현상은 단순한 개인의 취향을 넘어서 사회적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이와 동시에 만성적인 고독이 정신 건강 악화와 수명 단축 등 위험 요소와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지속적으로 발표되고 있다.
지난 2023년 미국 보건당국은 고독과 사회적 고립을 '신종 유행병'으로 규정하며 《외로움과 고립의 유행병(Our Epidemic of Loneliness and Isolation)》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독이 항상 불행이나 부정적인 결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부 사람들에게 고독은 정서적 안정과 만족감을 제공하며, 심리적 성장의 기회로 작용한다. 이러한 현상은 심리학자들 사이에서 '긍정적인 고독(positive solitude)'이라는 개념으로 주목받고 있다.
◆ 자발적 고독이 주는 회복력
토마스 박사는 "고독이 반드시 외로움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고 정서적으로 충전하는 귀중한 시간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지난 10여 년간 ‘왜 사람들은 혼자 지내는 것을 선호하는가?’라는 주제로 연구를 이어왔으며, 자신 또한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기쁨과 회복을 경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고독을 선택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일부는 정신적으로 소진된 상태에서 에너지를 회복하기 위해, 또 다른 이들은 창의성을 자극하거나 감정을 정리하기 위해 고독의 시간을 선택한다. 고독은 외부 자극에서 벗어나 내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며, 자아 인식을 통해 삶의 방향성을 재정비하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 사회적 낙인은 고독을 왜곡한다
2024년 미국에서 실시된 전국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6%가 '혼자 보내는 시간은 정신 건강에 필수적'이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토마스 박사는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이는 고독이 개인의 행복에 긍정적인 기여를 한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여전히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토마스 박사는 "미국 사회는 오랜 시간 동안 '고독은 나쁜 것이다'라는 신념을 유지해 왔다"며, 이는 고독에 대한 문화적 시각의 결핍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2025년 2월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 언론의 보도에서 혼자 있는 상황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헤드라인은 긍정적 헤드라인보다 10배 이상 많았다. 이와 같은 언론 보도는 고독을 부정적인 감정 상태로 고정시키는 프레임을 강화하고, 대중의 인식과 태도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 진짜 고독은 '연결된 단절'에서 온다
토마스 박사는 "고독의 긍정적 효과는 단순히 혼자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진정한 고독은 의식적으로 자기 자신과 연결되기 위한 시간과 공간을 마련했을 때 비로소 실현된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디지털 기기, 그중에서도 소셜 미디어 사용과 고독의 질 사이에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강조한다. 고독한 시간의 대부분을 스크린 앞에서 보내는 사람들—특히 소셜 미디어를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경우—는 고독으로 인한 심리적 이점을 거의 누리지 못한다. "소셜 미디어는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 몰입해 있는 동안 우리는 진정으로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토마스 박사는 말한다.
바쁜 현대인의 일상 속에서, 스크린에서 눈을 떼고 자신을 마주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렵고 불안한 일이 되어가고 있다. 더 나아가 혼자 있는 것이 '비정상'으로 인식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는 불필요한 죄책감이나 불편함을 느끼게 되며, 결과적으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낭비된 시간'으로 왜곡된다.
◆ 고독은 자기 회복의 시간
토마스 박사는 긍정적 고독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이는 타인을 기쁘게 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중심에 두고 내면에 주의를 기울이는 시간이다
이러한 고독은 사고를 명료하게 하고 감정적 균형을 회복하며 자신과의 깊은 연결감을 강화해주는 경험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는 또 "과도한 사회적 교류는 때로 부담이 되며, 그로 인해 인간관계의 질이 저하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추구하는 최근의 경향은 과도하게 바쁘고 사회적으로 과잉 연결된 생활 속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심리적 욕구를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
고독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일이 쉽지 않지만, 이에 도전하는 연구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2025년 발표된 연구에서는 혼자 보내는 시간을 '고독(loneliness)'이 아닌 '자신만의 시간(my time)'으로 명명했을 때, 사람들은 보다 긍정적인 감정을 느낀다는 결과가 보고되었다. 이는 언어적 프레이밍이 정서적 반응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고독은 단절이 아니다. 오히려 외부 세계로부터 한 발 물러나, 내면 세계와 다시 연결되는 '선택된 회복의 시간'이 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필요한 것은 고독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정신적 건강을 위한 필수 자원으로 인식하는 새로운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