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알 크기 심박조율기...작은 생명 위한 '의료 혁신'
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쌀알보다 작은 생분해성 심박조율기(pacemaker)가 개발돼, 신생아 등 심장 치료 환자들의 부담을 줄일 수 있을 전망이다.
존 로저스(John A. Rogers)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가 이끄는 국제공동연구팀은 쌀알보다 작은 크기의 생분해성 무선 심박조율기를 개발해, 이 연구 성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심박조율기를 체내에 삽입하고 있으며, 수술 후 심박이 정상으로 회복될 때까지 일시적으로 심박조율기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기존에는 일시적인 심박조율기가 필요할 경우 전극을 심장에 직접 봉합해 사용하는 방식이 주로 쓰였다. 이후 장치가 불필요해지면 제거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는 심장 손상이나 감염 등 심각한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고르 에피모프(Igor Efimov) 노스웨스턴대 의과대학 교수는 "일시적인 심박조율기의 와이어는 말 그대로 체외로 노출되어 있고 그것이 심박조율기 본체에 연결되는 구조다. 심박조율기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면 의사가 와이어를 제거하는데, 와이어가 흉터 조직과 유착되어 있으면 심근 손상의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 인간에게는 작은 걸음일지 모르지만 인류 전체에는 위대한 도약이다"라는 말로 유명한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 역시 일시적 심박조율기 와이어 제거 과정 중 발생한 내출혈로 2012년 사망한 바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스웨스턴대 존 로저스 교수와 에피모프 교수 등이 참여한 연구팀은 2021년, 불필요해지면 체내에서 자연 분해되는 동전 크기의 심박조율기를 개발했다.
이후 국제연구팀은 해당 심박조율기의 추가 소형화에 도전했고, 그 결과 가로 1.8mm, 세로 3.5mm, 두께 1mm의 초소형 심박조율기 개발에 성공했다.
이번 심박조율기에는 화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변환하는 갈바니 전지의 원리가 적용됐다. 탑재된 두 종류의 금속은 배터리 역할과 동시에 심장에 전기 자극을 전달하는 전극 역할을 겸하며, 외부 배터리나 전선 없이도 자체적으로 전류를 생성할 수 있다. 조율 신호는 광학 방식으로 전달된다.
로저스 교수는 "심박조율기가 체내에 삽입되면 주변 체액이 도전성 전해질 역할을 하여 두 금속 패드를 전기적으로 연결, 배터리를 형성한다. 이후 피부에 부착된 패치에서 발광한 빛이 환자의 몸을 통과해 심박조율기의 광 센서에 도달하면 장치의 전원이 켜진다"고 설명했다.
이 심박조율기는 환자의 흉부에 부착된 유연한 패치와 연동해 작동하며, 패치가 부정맥을 감지하면 자동으로 빛을 점멸시켜 심박조율기에 자극 신호를 전달하는 구조다.
특히, 장치의 크기가 매우 작아 심장 여러 부위에 분산 부착이 가능하며, 서로 다른 파장의 빛을 활용해 각 부위를 독립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다른 의료기기와 병용이 가능하고 체내에서 자연스럽게 용해되므로 외과적 제거 수술도 필요 없다.
에피모프 교수는 "신생아의 약 1%가 선천성 심장질환을 안고 태어난다. 대부분은 수술 후 7일 정도면 회복되지만, 이 기간 동안에는 심박조율기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이제 우리는 이 초소형 심박조율기를 아이의 심장에 설치해, 유연하고 정밀한 웨어러블 디바이스로 제어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장치 제거를 위한 추가 수술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해당 심박조율기는 쥐, 돼지, 개 등의 동물 실험은 물론, 사망한 장기 기증자의 심장 조직을 활용한 인체 테스트를 통해서도 유효성이 입증됐다. 연구팀은 이 기술이 2~3년 이내 상용화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