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방, 스트레스로 인한 식물 '비명' 듣고 산란 장소 결정
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최근 몇 년간 여러 연구를 통해 인간을 비롯한 동물뿐 아니라 식물 역시 다양한 방법으로 외부 자극에 반응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그간의 연구를 통해 식물도 탈수 상태 등 스트레스 상황에 노출되면 인간 가청범위에서 벗어난 고주파로 소리를 낸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식물의 소리는 인간은 들을 수 없지만 나방과 같은 곤충과 생쥐 등 작은 포유류는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최근 일부 나방이 식물의 소리를 산란 장소 결정을 위한 지표로 삼고 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조사 결과는 지난 11월 논문 사전 공개 오픈액세스 서버 '바이오리시브'(BioRxiv)에 공개됐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 연구팀은 2019년 12월 '식물은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초음파 비명을 지른다'는 연구 논문을 발표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스트레스 환경에서 식물은 10~100kHz의 초음파를 방출했으며, 일부 동물은 3~5m 떨어진 곳에서 '비명'과 유사한 식물들의 소리를 감지할 수 있었다.
2019년 논문에서 연구팀은 물을 주지 않거나 줄기에 칼집을 넣는 스트레스 상황을 만들고 식물이 내는 소리를 조사했다. 그 결과 식물은 스트레스 종류에 따라 다른 소리를 내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연구를 주도한 텔아비브대 곤충학자인 리아 셀처(ProfileRya Seltzer) 박사 연구팀은 식물이 스트레스로 내는 비명을 곤충이 듣고 어떤 행동을 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새로운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팀은 식물이 내는 비명을 들을 수 있는 담배거세미나방의 일종인 ‘목화잎벌레(Spodoptera littoralis)‘가 알을 낳는 장소를 결정할 때 식물의 비명을 참고하는지 여부를 조사했다.
나방의 유충은 산란 장소에서 성장하기 때문에 '유충이 성장하기에 적합한 곳'에 알을 낳을 필요가 있다.
연구팀은 먼저 암컷 나방이 갓 태어난 애벌레에게 충분한 식량을 제공해 줄 가능성이 높은 식물에 알을 낳는 것을 선호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다음으로 목화잎벌레가 '식물의 비명'을 이용해 알을 낳을 장소를 정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다른 실험을 고안했다.
이 실험에서는 실험 장소 양 끝에 '수분을 듬뿍 머금은 건강한 토마토'를 심은 뒤 한쪽 토마토 근처에서 '수분을 잃은 토마토가 내는 소리'를 녹음한 것을 내보냈다. 실험 결과, 목화잎벌레는 '수분을 잃은 토마토가 내는 소리'가 울리지 않은 쪽의 토마토에 알을 낳는 것을 강하게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셀처 박사는 "이는 새로운 발견이다. 식물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소리를 내고 곤충은 그 소리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다. 암컷 목화잎벌레는 토마토가 내는 소리를 '토마토가 근처에 존재한다'는 정보로 인식할 뿐 아니라 '소리를 내는 토마토는 수분이 부족하다'는 정보로도 인식한다"면서 "우리는 이 현상이 더 많은 곤충과 식물에 의해 행해지고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미국 위스콘신주 로렌스대에서 감각생태학을 연구하는 조디 세드록 교수는 "놀라운 연구 결과"라면서 "목화잎벌레가 특정 식물이 내는 소리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는 매우 강력한 증거"라고 평가했다.
연구팀은 이 개념이 자연계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는지와 나방이 음향 신호 이외에도 냄새나 기타 정보를 어떻게 조합해 활용하는지 등 추가 연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