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 ‘상흔’만 남긴 채 22시간 만에 진압

사망자 23명·부상 8명…유가족 비통 속 아리셀 대표 “진심을 다해 지원”

2024-06-25     송협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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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포스트=송협 선임기자| “왜 항상 우리만 아파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살아보겠다고 노력하고 또 발버둥 치는데 왜 이런 고통과 슬픔의 몫은 우리가 감내해야 하는지 왜 우리여야 하는지 하늘에 묻고 또 묻고 싶습니다.”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 참사 유가족)

6월의 마지막 월요일을 맞이한 경기도 화성의 리튬 공장은 재앙의 시작이었다. 처음 작게 시작된 발화(發火)점을 향해 평소 배웠던 소화기를 연신 뿌려댔지만 가열된 리튬 배터리는 소화기 분말을 비웃기라도 한 듯 더욱 거세지면서 폭발력에 가속도를 붙였다. 그렇게 시작된 작은 불씨는 젊은 근로자들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사상자 30여 명이 발생한 화성시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 화재는 처음 발화 시점에서 22시간이 지난 후에야 완전히 진화됐다. 공장에서 작업 중이던 젊은 근로자 23명이 숨지고 8명이 부상을 당하고서야 말이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는 25일 오전 8시 48분을 기해 아리셀 공장 화재 진화를 마쳤다고 전했다. 소방당국은 상황 판단 회의 결과 연기가 보이지 않아 화재가 다시 발생할 위험이 없다고 보고 이 같은 판단을 내렸다.

30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핵심 원인으로는 한번 가열되면 폭발·연소하는 금속물질 리튬의 특성인 ‘열폭주(thermal runaway)’ 현상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불은 리튬전지 완제품을 검수하고 포장하는 이 공장 3동 2층에서 발생했다. 화재 당시 사상자들은 해당 작업을 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화재 발생 직후 시뻘건 화염이 공장 외부로 뿜어져 나오면서 뿌연 연기가 건물 자체를 휘감았고 순식간에 '펑', '펑' 터지는 폭발음도 연쇄적으로 들렸다. 특히 화재가 발생한 공장에는 높이 45㎝, 지름 30㎝ 원통형 등 다양한 크기의 리튬 배터리 3만5000개가 보관돼 있던 것으로 소방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아리셀은 ‘스마트 그리드(지능형 전력망)’ 계량기 등에 사용하는 리튬 일차전지를 제조·판매하는 업체다.

아리셀 공장을 운영하는 에스코넥의 박순관 대표(사진 우측)

리튬전지 열폭주 현상이 벌어지면 배터리 온도가 불과 몇 초 만에 400도 이상으로 폭증하고 꺼진 불이 다시 살아나기도 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리튬전지 내부에는 음극과 양극을 막는 분리막이 있는데 충격이나 열 등으로 분리막이 손상되면 양극과 음극이 접촉해 열이 발생한다.

열은 순식간에 수백 도까지 치솟게 되고 제어가 안 되는 상황에 다다르면 폭발로 이어진다. 여기에 리튬전지에 불이 나면 불화수소가 다량으로 발생한다. 불화수소는 한두 모금만 마셔도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대표적인 유독 물질로 꼽힌다.

때문에 화재는 물로 소화하기 어렵다. 리튬전지에 물이 닿으면 수소가 발생하는데, 이때 발생한 수소가 산소와 만나면 불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소방차가 화재 현장에 빠르게 도착해도 불을 쉽게 끄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에 불이 난 공장이 대형 화재에 취약한 ‘샌드위치 패널’이었던 것도 화재를 키웠다.

리튬은 상온에서 순 산소와 결합해도 발화하지 않고, 특히 일차전지는 화재 위험성이 작은 것으로 여겨져 ‘일반화학물질’로 분류돼 별도의 대응 매뉴얼이나 안전기준이 없어 철저한 안전기준 마련이 시급하다.

한편 참사 발생 하루 만인 25일 오후 2시께 화재 공장인 아리셀의 모회사 에스코넥의 박순관 대표는 화재 현장에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박 대표는 “먼저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한데 대해 너무 안타까운 마음으로 유족에게 깊은 애도와 사죄 말씀을 드린다.”면서 “이번 사고로 부상 및 피해를 입은 모든 분께 조속한 회복을 기원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박 대표는 “회사는 큰 책임감을 느끼고 고인과 유족에게 가능한 모든 방법을 통해 진심으로 필요한 사항을 지원할 것”이락며 “사고 원인 규명 및 재발 방지 등 후속 조치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위험 물질인 리튬전지 제조 특성상 철저한 안전 관리와 교육, 화재 대비가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외국인 작업자가 첫 출근에 나서도 출구를 알 수 있도록 상시적, 지속적으로 교육을 실시했고 작업장 곳곳에 비상대피 매뉴얼 역시 비치했다.”고 해명했다.

아울러 “외부에서 받는 안전점검을 정기적으로 받았고 리튬전지 화재 진압을 위한 적합한 분말용 소화기를 비치하고 사용 방법도 교육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