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어난 거대 블랙홀"...관측 최초 성공
유럽남방천문대(ESO) 연구팀, 휴면 은하서 활동은하핵 형성 관측
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수명을 마치고 빛을 잃은 은하가 다시 환해진 이유가 밝혀졌다.
유럽남천문대(ESO) 연구팀은 "은하 중심부에서 휴면 중이던 블랙홀이 갑자기 활동을 시작하면서 은하가 전에 없이 밝은 빛을 내기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은하핵이 주위를 훨씬 웃도는 에너지를 내뿜는 '활동은하핵(AGN)' 형성의 첫 기록일 가능성이 있어 주목받고 있다.
연구 결과는 국제 술지 '천문학 및 천체물리학(Astronomy & Astrophysics)'에 게재됐다.
블랙홀은 빛조차 탈출할 수 없는 중력을 가진 천체로, 주위 물질을 활발하게 삼킬 때 형성되는 강착원반이나 고온 가스에서 강한 빛과 X선이 방출된다. 반대로 주위에 삼키는 물질이 사라지면 성장이 멈추기 때문에 이런 블랙홀은 '휴면 블랙홀'이라고 부른다.
지구에서 3억 광년 떨어진 은하 'SDSS 1335+0728'의 중심에는 태양의 150만 배 질량을 가진 초대질량 블랙홀이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졌지만, 지난 20년 이상 활동 징후를 보이지 않았다.
천문학자들은 데이터 분석을 통해 2019년 12월 SDSS 1335+0728이 갑자기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4년 이상 활발하게 가시광선·자외선·적외선을 내뿜은 SDSS 1335+0728은 2024년 2월부터 X선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유례가 없는 일이다.
거대한 별이 수명을 다해 대폭발을 일으키는 초신성 폭발이나 천체가 초대질량 블랙홀에 너무 접근해 붕괴하는 '조석 붕괴 현상(TDE)'에서도 유사한 빛이 관측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일반적으로 며칠, 길어야 몇 달 동안 이어진다.
칠레 밀레니엄 천체물리연구소의 천문학자 로레나 에르난데스 가르시아 박사는 "이 현상에 대한 가장 구체적인 설명은 은하의 핵이 활동을 시작하는 것을 목격했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대질량 블랙홀이 활성화되는 것을 최초로 실시간 관측한 셈이다"라고 말했다.
유럽남천문대 연구팀이 공개한 아래 영상을 보면 SDSS1335+0728이 활발하게 빛나기 시작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블랙홀이 활동을 다시 시작할 수 있던 이유는 추가 연구를 통해 규명해야 한다. 아직 SDSS 1335+0728 중심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명확하지 않기 않기 때문에, 천문학자들은 NASA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 등을 통한 미래 관측에 기대를 걸고 있다.
파울라 산체스 사에즈 유럽남천문대 연구원은 "손에 쥔 모든 데이터가 우리가 처음으로 활동은하핵 형성을 관찰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같다. 머지않아 어떻게 활동은하핵이 형성되는지, 그리고 대질량 블랙홀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알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