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언제부터 기술 지식을 빠르게 축적했을까?
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인류는 오랜 세월에 걸쳐 다양한 지식을 축적·계승함으로써, 개인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문화를 구축했다.
지난 330만년 동안의 석기 제작 기술 변천사를 분석한 새로운 연구를 통해 인류가 약 60만 년 전부터 기술적 지식을 급속히 축적하기 시작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논문은 국제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게재됐다.
인류가 다른 영장류와 차별화된 점 중 하나는 오랜 세월에 걸쳐 쌓아온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사람들이 남긴 지식이 계승됨으로써, 현대인은 비록 자기 자신이 다양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복잡한 공산품과 사회 시스템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인류기원연구소의 찰스 페로(Charles Perreault) 박사는 "우리 호모 사피엔스(현생 인류)는 열대림부터 북극권 툰드라까지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생태학적 조건에 성공적으로 적응해 왔다. 이전 세대의 해결책을 기반으로 재결합해, 문제에 대한 새롭고 복잡한 해결책을 빠르게 도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페로 박사 연구팀은 인류가 언제부터 기술적 지식을 축적하기 시작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지난 330만 년간 석기 제조기술의 변천을 분석하기로 했다.
연구팀은 57개 발굴 현장에서 발견된 62개의 석기에 대해 각 석기 제조에 필요한 단계의 수에 따라 분류했다. 분석에는 아프리카, 유라시아 대륙, 그린란드, 오세아니아, 남북 아메리카 대륙에서 발견된 다양한 석기가 포함됐다.
그 결과, 초기 인류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와 기타 고대 인류가 살았던 약 330~180만년 전에는 석기 제조 단계 수가 1~6개에 그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약 180~60만 년 전부터 단계 수가 4~7개로 늘어 석기 제조의 복잡성이 다소 증가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석기 제조 복잡성에 큰 변화가 나타난 것은 약 60만 년 전 이후의 일이다. 이 시기부터 석기 제조 단계 수는 5~18개로 급격히 증가해, 인류가 이전 세대가 발견한 기술적 지식을 축적하게 되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왼쪽부터 ▲약 190~165만 년 전 석기 ▲70만 년 전 석기 ▲30만 년 전 석기를 나열한 것이다. 새로운 것일수록 석기 제조의 복잡성이 증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연구팀은 "사회적 학습을 통해 수세대에 걸쳐 지식에 대한 수정·혁신·개선을 축적하면 개인의 발명을 뛰어넘는 기술과 노하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지식을 축적하고 문화를 조성함으로써 무작위 돌연변이나 자연도태에 의한 진화와 마찬가지로 문제 해결 방법이 고도화되고 다양한 방법으로 집단에 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 아울러 집합적 지식과 그에 관한 행동이 발달함에 따라 학습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가 선택적으로 우세해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홍적세(Pleistocene) 중기에 축적된 문화가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지만, 인류 진화의 더 빠른 시기에 고고학적으로 보존되지 않는 형태로 지식의 축적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연구팀은 "초기 인류는 고고학적으로 보이지 않는 복잡한 사회적·기술적 행동을 발달시키기 위해 축적된 문화에 의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