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 꿀벌이 미국에서 급증하는 원인은?
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화분 매개체인 꿀벌은 농산물 생산과 생태계 균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온도변화에 매우 민감한 변온동물인 꿀벌은 2000년대 들어 온난화 영향으로 개체수가 크게 감소하면서 세계적인 환경 문제로 지목되고 있다.
꿀벌 개체수는 미국에서도 질병·기생충·농약·재해·이상기후 등의 영향으로 급감하는 추세다. 매년 벌 손실 조사를 해온 비영리단체 '비인폼드 파트너십(Bee Informed Partnership)에 따르면 2020년 겨울 미국 내 꿀벌의 연간 손실률은 역대 최고치인 37.7%를 기록했다.
그런데 전미농업통계국(NASS)은 자체 조사를 통해 최근 꿀벌 개체수가 오히려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구체적으로 2007년부터 2022년에 걸쳐 31% 증가했으며, 380만 개에 달하는 꿀벌 군체(群體, colony)가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워싱턴포스트(WP)가 NASS 데이터를 기초로, 2007년 이후 가축의 증감 비율을 나타낸 것이 아래 그래프다. 노란색이 감소 경향에 있는 가축이고, 파란색이 증가하고 있는 가축이다. 꿀벌이 31% 증가로 가장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NASS 조사에서는 이처럼 꿀벌 군체가 빠르게 증가하는 반면, 미국 농무부(USDA) 꿀벌 연례 리포트에서는 반대로 감소 경향을 보인다.
아래는 WP가 NASS 조사 결과와 USDA 보고서를 한 장으로 정리한 그래프다. NASS 데이터가 짙은 노란색, USDA 데이터가 연한 노란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NASS의 수치는 꿀벌 군체 수가 2002년 이후 증가하다가 2017년 일단 감소했지만 2022년에 사상 최고로 증가한 반면, USDA 수치는 2017년 이후 지속적인 감소세다.
이 상반된 결과에 대해 농무부 소속 경제학자는 "NASS의 조사는 1000달러 이상의 농산물을 판매하는 미국 내 모든 농장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반면 USDA 리포트는 5개 이상의 벌통이 있는 대규모 양봉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NASS의 '1000달러' 정의는 조사가 시작된 1975년 이후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인플레이션으로 벌꿀 가격과 수분(受粉) 비용이 오르면서 그동안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못한 작은 양봉농가도 조사 대상이 된 것이다.
소규모 양봉농가는 미국 일부 주(州)에서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가령 텍사스에서는 2012년 이후 5에이커(약 2만㎡)~20에이커(약 8만㎡) 토지에서 꿀벌을 5년간 사육하면 농업 세제 혜택을 주는 제도를 도입 중이다. 그 결과, 양봉농가가 폭발적으로 늘어 2012년부터 2022년까지 그 수가 4배 이상 급증했다.
이러한 노력은 인위적인 수분이 필요한 농작물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례로 미국에서는 2007년 이후 꿀벌의 증가로 아몬드의 경작 면적이 꾸준히 늘어 수확량이 크게 증가했다.
한편, 이러한 인위적 꿀벌 관리가 나비와 나방 등 꽃가루 매개 재래종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농가의 보호 속에 있는 꿀벌은 미국 내 4000종에 달하는 꽃가루 매개 곤충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으며, 그중 40%가 멸종 위기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나비 서식지를 보호하는 비영리단체 '서세스 소사이어티(Xerces Society)'는 "꿀벌과 양봉농가 모두를 지원하면서 토종 꽃가루 매개체를 구하는 방법은 농장과 정원에 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서식지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