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해일, 10년 이상 지나도 피해자 건강에 악영향

2024-04-02     김정은 기자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Pixabay

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2004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인근 해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지진에 의한 지진해일(津波·쓰나미) 피해자를 조사한 연구에서 14년이 경과한 시점에도 이재민의 호르몬 분비에 그 영향이 남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게재됐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PNAS

2004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북서부에서 발생한 인도양 지진해일은 역사상 최악의 피해로 기록된 자연재해 중 하나다. 지진의 직접적 영향이 적었던 곳에서도 10m에 달하는 지진해일이 강타해, 13만 명이 넘는 사망자와 3만 명이 넘는 실종자를 내는 대참사로 이어졌다. 

이러한 대규모 재해는 그 자체로 초래되는 신체적인 피해와 더불어 이재민의 정신에도 깊은 상처를 남긴다. 미국 듀크대 국제관계학 교수인 던컨 토머스 등 연구팀은 'STAR(Study of the Tsunami Aftermath and Recovery)'라는 장기 조사 프로젝트를 통해 수마트라 지진해일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STAR 프로젝트 참여자이자 논문 최대 저자인 하버드대 랄프 로튼(Ralph Lawton) 박사는 수마트라섬 지진 발생 이후 14년이 지난 시점에 이재민의 모발 샘플을 채취해, 코르티솔 호르몬의 수준을 측정했다.

코르티솔은 부신피질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의 일종으로, 보통 스트레스에 반응하여 체내에서 증가한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코르티솔이 분비되는 것은 이른바 '투쟁-도피 반응'(fight or flight response)의 일부다. '투쟁-도피 반응'은 스트레스 상황이 발생했을 때 뇌가 맞서 싸울 것인지 아니면 도망갈 것인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교감신경계가 영향을 받아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혈압이 상승하며, 혈관 수축·근육 팽창·방광 이완·발기 저하 등도 나타난다. 

그런데 만성적 혹은 급성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호르몬 분비를 담당하는 '시상하부-하수체-부신피질계(HPA)축'에 기능 부전이 나타나 호르몬 수준이 조절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연구팀이 615명의 모발을 분석한 결과, 수마트라 지진으로 지진해일 피해를 입은 지역에 살고 있던 실험 참여자의 코르티솔 수치는 일반인에 비해 낮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차이는 주로 여성에게 두드러졌으며, 막대한 피해를 입은 지역에 거주한 여성은 피해를 입지 않은 여성에 비해 코르티솔 수치가 30%나 낮게 나타났다. 한편, 남성의 코르티솔 수치는 지진해일 발생 시 살던 장소와 유의미한 관련성은 보이지 않았다.

또 코르티솔 수치 저하는 지진해일 발생 2년 후까지 진행된 조사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수준이 높았던 여성에서 더 컸다.

이 결과는 지진해일로 인한 강하고 장기적인 스트레스가 이재민의 HPA축에 영향을 미쳐 장기간에 걸친 코르티솔 수치 저하로 이어졌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토마스 교수는 "중요한 발견은 코르티솔 수치가 낮은 사람들은 지진해일 발생 14년 뒤 신체적 심리사회적 건강상태가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지진해일과 그 여파로 인한 스트레스가 장기화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