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안전사고 속 법조계 인물 외부인사 영입 이목
안전경영 강화 방침 불구 노동 현장 둘러싼 갈등
'부당 승계' 의혹 허영인 회장 형사재판 내달 본격화

기업의 생존이자 성장,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은 중요한 의제(Agenda)가 되고 있습니다. ESG경영이 기업가치와 기업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조사결과들은 묵과할 수 없습니다. 국내외 ESG 평가 기관에서는 매년, 매분기 기업들의 ‘성적표’를 내놓고 있습니다. 기업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객관적인 지표가 마련된 셈이죠. 경제적 성장 중심에서 가치적 성장 중심으로 흐름이 바뀌면서 ESG경영은 최대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상생을 통한 사회적 가치 창출과 윤리·준법경영을 통한 투명한 지배구조 확립, 탄소중립을 필두로 한 친환경 투자 등이 그 일환입니다. <편집자주>

왼쪽부터 허영인 SPC그룹 회장, 허진수 사장, 허희수 부사장. (사진=SPC그룹)
왼쪽부터 허영인 SPC그룹 회장, 허진수 사장, 허희수 부사장. (사진=SPC그룹)

“기존 ESG경영에 안전(Safety)을 더한 SPC그룹만의 ‘ESG+S경영’을 추진하겠다.”

SPC그룹(이하 SPC)은 올해 초 ‘안전경영 선포식’에서 이같이 언급하며 ESG경영에 박차를 가할 계획을 밝혔다. 지난해 발생한 잇단 계열사 노동자 안전사고 이후 후속조치로 안전경영에 더욱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셈이다. 

그러나 지난달 사망사고 현장인 계열사 SPL의 현장 재가동과 관련해 사측의 압력이 있었다는 노조 측의 주장이 제기돼 여전히 노동자들의 인권과 관련한 논란이 양산되고 있다. 또한 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허영인 SPC그룹 회장의 재판 역시 4월 본격적으로 시작될 예정이어서 ‘오너리스크’ 등 SPC 관련 여론의 시선은 더욱 집중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잇단 악재 속 지난해 말 임원 승진 인사도 미루면서 자중하는 모습을 보이던 SPC는 최근 법조계 출신 인물들을 영입하는 등 ‘법무 강화’ 행보를 보여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법적 이슈와 관련해 법무 전문가를 영입한 것 아니냐는 시각을 내놓고 있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SPC는 이달 초 열린 주주총회 및 이사회에서 판사 출신 강선희 변호사를 대표이사 사장으로 영입했다. 강 대표는 기존 황재복 대표와 함께 각자 대표체제로 나선다. 경영을 총괄하던 황 대표는 사업 관리 등 내부 업무를, 강 대표는 법무·대관·홍보 등 대외 업무를 각각 담당한다. 

실제로 강 대표는 서울중앙지법 판사와 법무법인 춘추 변호사로 활약했으며 2004년 SK그룹으로 옮겨 지난해까지 SK이노베이션 부사장(지속가능경영본부장)을 지냈다. 올 초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로 자리를 옮긴 후 이번에 SPC에 영입됐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10월 발생한 SPL공장 노동자 안전사고로 중대재해처벌법 등 법적 이슈가 불거지면서 법적 이슈 대응을 위해 법무 전문가를 영입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SPC의 ‘법무 강화’ 측면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는 최근 잇단 외부인사 영입과 지난달 단행한 주요 계열사 인사 때문이다. SPC그룹은 파리크라상, SPC삼립, SPL, 샤니, 호남샤니 등 계열사를 두고 있다. 계열사 인사에서 SPL공장 안전사고와 관련해 법무 대응에 중책을 맡았던 박원호 부사장을 SPL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또한 제55기 정기주주총회에서 SPC삼립 사외이사로 김앤장 변호사인 제프리 존스와 최금락 전 언론인을 신규 선임했다.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으로 선임된 제프리 존스는 김앤장 법률사무소 최초의 외국인 국제변호사 및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직을 수행, 유수의 대기업에서 사외이사를 역임한 적이 있는 기업 경영 법률 전문가로 알려졌다. 최금락 사외이사는 기자 출신으로 청와대 홍보수석을 거쳐 현재는 법무법인 광장의 고문을 맡고 있다. 리스크(Risk) 관리 분야를 강화한 측면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SPC 관계자는 “강선희 대표이사 영입의 경우, 과거 판사 이력보다는 SK의 임원으로 오랜 기간 활동했고 법무, 홍보, 대관 전문가를 찾던 중 영입이 결정된 것”이라면서 “이례적으로 법조인 출신이라는 점이 부각되고 있지만 대기업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한 기업 관리 측면이 강하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SPC그룹 내부적으로 법무팀, 법무법인이 있는 상황에서 판사 출신 대표이사 영입이 큰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라면서 “법무 강화 측면으로 해석되기에는 무리”라는 입장을 내놨다. 

(사진=SPC그룹)
(사진=SPC그룹)

◆ “안전경영 강화” VS “사망사고 현장 재가동 합의서 강요”…노동 환경 ‘갈등’  
 
SPC 제빵 프랜차이즈인 ‘파리바게트’ 등에 빵을 납품하는 SPL 공장 사망사고와 성남 샤니 제빵공장에서의 안전사고가 발생한 후 여론이 거세지자 SPC는 안전경영위원회를 출범시키고 근로환경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올 초 안전경영위원회 선포식에서는 산업안전확립 분과를 통한 안전보건 경영체계 확립, 노동환경개선 분과에서는 노조와 함께 발족한 근로환경TF를 통해 노동자 근로 환경 개선, 사회적책임이행 분과에서는 소통 강화와 안전문화 확산 캠페인 등을 추진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황재복 SPC 대표이사는 “안전경영 선포식을 시작으로 안전경영 체계를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직원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문화를 정착시켜 ‘New SPC’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전경영위원회 선포식 이후 3개월이 지났지만 노사간의 갈등은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있다. 특히 SPC는 계열사 SPL이 노사 협의를 통해 새로운 샌드위치 라인을 가동했다고 밝혔지만 일부 노조 측은 재가동 합의를 거절했음에도 사측이 재가동을 강행했다고 주장하고 나서 논란이 되고 있다. 

SPC 평택공장 SPL은 지난해 10월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했던 샌드위치 소스 교반기 라인을 지난달 27일 재가동했다. 그러나 재가동 전에 본사 임원이 강규형 화섬식품노조 SPL지회장에게 재가동 합의서를 강요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화섬식품노조 측은 “재가동 합의서를 강요한 SPC를 규탄한다”며 “노동부 인가서류와 노사협의회 회의록을 공개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화섬식품노조는 성명서에서 재가동 합의서를 강요한 책임자에 대한 징계와 사과, 작업공정과 근무 형태 개선 없는 재가동 반대, 노동자 생명권 보장, 샌드위치 라인 재가동에 관한 노동부 인가서류와 노사협의회 회의록을 공개, 노동부 기획 감독 세부 결과와 집행했다고 하는 후속 조치 내용의 공개, 화섬식품노조 SPL지회의 안전경영위원회 참여 보장과 1000억 원 안전 투자 집행과정의 투명 공개 등을 요구했다.

산재사망사고 이후 SPC는 허 회장과 계열사 사장단이 나서 대국민 사과와 1000억원을 투입하는 재발방지대책을 발표했다. 또 수년째 갈등을 빚던 노조와도 협상에 나서는 등 사태수습에 나서겠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노사 간 봉합은 이뤄지지 않고 있는 모양새다. 

SPC 관계자는 “화섬식품노조 측이 SPL 재가동과 관련해 반대한 적 없다. 합의서 강요 역시 전혀 사실무근”이라면서 “평택 SPL 지회장 측이 아닌 민주노총 상위 단체에서 성명서를 낸 것으로 알고 있다. 화섬식품노조 성명서에서 주장하는 내용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 허위사실로 유포한 것”고 해명했다. 

(사진=SPC CI)
(사진=SPC CI)

◆ ‘배임 혐의’ 허영인 회장 형사재판 본격화…‘오너리스크’도 악재

산재사망사고 등 노동 환경을 둘러싼 이슈가 여전한 가운데 오너리스크도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증여세 부과를 회피하기 위해 밀다원 주식을 삼립에 저가로 양도해 샤니와 파리크라상에 손해를 입힌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허영인 SPC그룹 회장에 대한 형사 재판이 4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20년 7월 계열사 부당지원, 배임 등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SPC 그룹에 과징금 총 647억원을 부과하고 허 회장 등 경영진을 검찰 고발한 바 있다. 

공정위에 따르면 SPC가 총수 일가 개입 아래 2011년 4월부터 2019년 4월까지 약 7년간 그룹 내 부당지원을 통해 삼립에 총 414억원 상당의 이익을 제공했다며 계열사들에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 허 회장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허 회장은 특경법상 배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업계에 따르면 SPC는 파리크라상과 샤니가 보유하던 밀가루 생산업체 ‘밀다원’ 주식을 2012년 삼립에 정상가격(404원)보다 현저히 낮은 주당 255원에 양도했다. 당시 SPC는 밀다원이 생산하는 밀가루를 삼립이 사서 계열사에 공급하는 구조였다. 

SPC는 총수 일가가 100% 지분을 보유한 파리크라상을 통해 다른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다. 지주사격인 파리크라상 최대주주는 허영인 회장이다. 허영인 회장은 지분 63.5%를 보유하고 있으며 허 회장의 아내 이미향(3.6%) 장남 허진수(20.2%) 차남 허희수(12.7%) 등 특수관계인이 지분을 가지고 있다. 

파리크리상 등 총수 일가가 밀다원 주식을 사실상 보유하고 있어 밀다원 매출은 총수 일가에게 증여로 잡히는 상황이었던 셈이다.

검찰은 밀다원 주식을 삼립에 팔지 않으면 매년 8억원의 증여세 부과가 예상됐고, 이에 허 회장이 저가 양도를 지시했다고 판단했다. 반면 허 회장과 SPC 측은 삼립이 종합식품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경영상 판단아래 밀다원 양도거래 이뤄진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증여세를 회피하고 통행세 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 아래 밀다원 주식을 적게 보유한 삼립에게 밀다원 주식 전체를 이전했다는 게 공정위의 시각이다. SPC그룹은 공정위의 이같은 제재에 대해 반박하며 행정소송을 제기해 재판이 진행 중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허영인 회장의 특경가법상 배임 혐의(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 재판장 최경서 부장판사) 첫 공판기일은 오는 4월 4일이다. 

SPC 관계자는 “행정소송은 진행 중으로, 선고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형사소송 역시 내달부터 진행돼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며 말을 아꼈다. 

저작권자 © 데일리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