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납중독 아닌 'B형 간염' 악화로 사망...모발 유전자 검사로 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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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은 음악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곡가 중 한 명으로 교향곡 제3번(영웅), 교향곡 제5번(운명), 엘리제를 위하여 등이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다. '악성(樂聖)'으로 불리는 그는 1827년 3월 죽음을 맞이했고 그 사인과 관련해 그동안 매독·납중독·수종(水腫) 등 여러 설이 제기됐다.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와 영국 케임브리지대 등 공동연구팀이 베토벤 머리카락에서 채취한 DNA를 분석한 결과 베토벤의 사인은 'B형 간염'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새롭게 보고했다. 논문은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게재됐다. 

1770년 독일 본(Bonn)에서 태어난 베토벤은 20대 중반부터 난청에 시달렸으며 40세 무렵에는 완전히 청력을 잃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평생 복통·설사 등의 위장 문제를 겪었고 1821년에는 간질환 증상인 황달이 있었으며 사후 부검에서는 간경변이 심하게 진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베토벤의 건강상태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미국과 유럽에 현존하는 '베토벤의 모발'로 알려진 8개의 머리카락 타래 샘플을 조사했다. 이 중 뮐러 타래·베르만 타래·할름-세이어 타래·모셸레 타래·스텀프 타래는 19세기에 살았던 중부 유럽인 남성 한 명의 머리카락인 것으로 판명됐다. 연구팀은 다양한 정보를 종합할 때 이 5개 타래가 베토벤의 실제 머리카락이라고 특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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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베토벤이 사망한 날 그의 곁을 지킨 독일 작곡가인 페르디난드 힐러가 잘라낸 것으로 알려진 '힐러 타래'는 베토벤의 것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힐러가 소지한 모발은 1999년 이미 DNA 분석 결과가 나왔는데 정상인의 100배에 이르는 납이 검출돼 당시 베토벤이 납중독으로 사망했다고 결론 내려 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하지만 이번 DNA 분석에 따르면 납중독을 베토벤 사인(死因)의 정설로 여기게 된 당시 연구에서 사용된 모발은 실제로는 유대인 여성의 모발인 것으로 판명됐다. 즉, 베토벤의 납중독 사망설은 완전한 오류였던 것이다. 애초 힐러가 보관한 베토벤의 머리카락 대신 누군가가 힐러의 며느리(동유럽 출신 유대인)의 머리카락을 넣어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아래 이미지는 베토벤의 것으로 특정된 5개 머리카락 타래 중 하나로, 가장 우수한 보존 상태로 인해 DNA 분석에 사용된 '스텀프 타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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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은 "베토벤 모발 샘플을 바탕으로 DNA를 추출해 분석을 진행한 결과, 간질환과 관련된 유전성 헤모크로마토시스(철분 대사장애) 질환 위험이 높았으며, 생전에 상당히 술을 좋아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알코올 섭취가 간에 악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며 "베토벤이 사망하기 적어도 몇 달 전에 B형 간염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증거도 나왔다"고 설명했다.   

연구팀 일원이자 막스 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 요한스 크라우스(Johannes Krause) 교수는 베토벤의 사인을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유전적 위험과 B형 간염 바이러스 감염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언급했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

연구팀은 오랜 세월 베토벤을 괴롭힌 위장장애에 대해서도 조사했다. 그러나 밀과 보리에 함유된 글루텐에 반응해 설사와 복통이 일어나는 '셀리악병'이나 우유에 포함된 유당을 소화 흡수하지 못하는 '유당불내증' 위험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과민성대장증후군(IBS)도 어느 정도 유전적 보호가 확인돼 베토벤 위장장애에 대한 유전적 설명은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논문 최대 저자이자 컬럼비아대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트리스턴 베그(Tristan Begg) 연구원은 "이미 알려진 병력을 고려할 때 베토벤은 간 질환에 취약한 유전인자를 보유하고 알코올을 자주 섭취한 상태에서 B형 간염 바이러스에 걸려 간경화로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며 "감정된 모발을 통해 베토벤의 건강상태와 가계에 대한 남은 의문이 해결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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