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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샤워를 하는 동안 왠지 머리가 맑아져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거나 과거의 기억을 선명하게 떠올린 경험을 한 사람은 많을 것이다. 목욕탕에서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발견해 '유레카'를 외친 고대 그리스 수학자 아르키메데스처럼 말이다. 

샤워 중에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쉬운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샤워를 하는 것이 창조성을 자극하는 것이 아닐까'에 초점을 맞춘 연구는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구는 샤워 행위 자체가 아닌, 샤워 등의 행위로 인한 기분 변화가 창의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초점을 맞췄으며, 일관된 답을 찾지도 못했다.

앞서 PC 화면상의 숫자를 보고 클릭하는 단순한 행위를 통해 창조성이 풍부해진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바 있지만, 다른 연구에서는 이 결과를 똑같이 재현할 수 없었다. 

이러한 연구는 무의미한 작업에 몰두할 때 나타나는 '마음의 방황(Mind Wandering)'에 중점을 맞추고 있다. 마음의 방황이란 현재 하고 있는 작업과 상관없는 생각이 빙글빙글 머리를 도는 듯한 상태를 말한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마음의 방황이 창의성을 자극한다는 가설을 검증했지만 안타깝게도 입증하지 못했다.

버지니아대 잭 어빙 교수는 그간의 연구에 이의를 제기하며, "앞선 연구는 단순 작업으로 마음의 방황을 재촉하고 있지만, 작업 자체가 지루해 마음의 방황이 생산적이지 못했다"며 "마음의 방황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했다"며 새로운 조사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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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빙 교수는 222명의 실험 참가자에게 90초간의 시간을 주고 '벽돌'이나 '페이퍼 클립'과 같은 일용품의 다른 쓰임새를 몇 가지 생각할 것을 요구했다. 그 후 참가자를 두 그룹으로 나누어 각기 다른 동영상을 시청하도록 했다.

첫 번째 그룹은 남자가 빨래를 개는 모습을 담은 3분짜리 지루한 동영상을, 두 번째 그룹은 코미디 영화'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일부를 3분 동안 시청하도록 한 뒤 다시 일용품의 쓰임새를 생각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 결과, 지루한 영상을 본 그룹은 색다른 아이디어를 내는 경우가 적었던 반면, 흥미로운 영상을 시청한 그룹은 창조적 아이디어를 더 많이 생성했다. 

이는 지루한 영상은 사람의 창의성을 자극하기 어렵다는 것을 시사한다. 지루한 영상을 본 그룹은 마음의 방황을 겪지 않았고, 탄생한 아이디어도 마음의 방황과는 무관한 사고에서 비롯됐다.

이 결과를 토대로 어빙 교수는 "마음의 방황은 참신한 아이디어를 촉진하지만, 사고에 일정한 제약을 주고 적당히 매력적인 활동을 할 때 도움이 된다"고 결론내렸다. 

다시 말해 집중하지 않아도 되는 지루한 기분 전환이 아닌 약간의 집중이 필요한 기분 전환이 있어야 마음의 방황이 생겨 창의성을 자극한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샤워를 하는 행위는 '집중'의 균형이 적당히 잡힌 상태에서 마음의 방황이 생겨 창조적인 아이디어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 

어빙 교수는 "샤워나 산책 같은 활동은 생각에 어느 정도 제약을 주기 때문에 마음의 방황이 생기기 쉽다. 창조적 아이디어 생성에는 제약의 균형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단 지루한 활동을 할 때도 뭔가에 집중하다 보면 마음의 방황이 생기고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미국 심리학회(APA)가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미학·창의성·예술 심리학’(Psychology of Aesthetics, Creativity, and the Arts)'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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