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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기후변화가 사람들의 생활과 농업 등 폭넓은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가운데, 전세계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와인의 맛도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IT·과학 전문 매체 '아스 테크니카(Ars technica)'가 와인 관련 전문가를 취재한 리포트를 공개했다.

◆ 기후변화가 바꾸어 놓은 와인의 맛..도수·당도·향까지

와인은 숙성한 포도를 수확하고 짜낸 과즙을 알코올 발효 숙성시켜 생산된다. 생산자는 와인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화학적 조건을 분석해 포도 재배 및 수확 단계에서 목표로 하는 와인의 최적의 상태를 선택해 고품질 와인을 생산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와 이로 인한 산불 등의 발생으로 와인 품질이 크게 좌우되고 있다.

극단적인 기후변화는 포도나무를 시들게 만들기도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포도 화학변화도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와인 품질은 포도 광합성을 통해 과실에 축적되는 당도, 포도가 익으면서 분해되는 산, 계절에 따라 축적되는 2차 화합물로 크게 좌우된다. 2차 화합물에는 적포도에 색감을 주어 자외선으로부터 보호하는 안토시아닌이나 와인에 떫은 맛을 유발하고 과실을 해충으로부터 보호하는 타닌 등이 포함된다. 

와인의 풍미에 크게 관여하는 이들 성분은 포도 품종·재배 장소의 토양·기후 등에 영향을 받고 있어 예측할 수 없는 날씨는 과실에 포함된 당분·산·2차 화합물의 균형을 깨뜨릴 수 있다. 가령 포도는 익으면서 산을 분해하고 당분을 축적하기 때문에 보다 온난한 기후에서 재배된 포도는 당분 과잉으로 달콤한 건포도 같은 과실이 되어 버린다. 와인 제조에서는 효모가 당분을 소비해 알코올을 생산하기 때문에 달콤한 과실은 와인 알코올 함량을 높인다. 실제로 남프랑스 등 온난한 지역에서 만들어진 와인의 알코올 도수가 높은 경향을 보인다. 

물론 처음부터 달콤한 와인 제조를 원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산미를 원하는 생산자라면 온난화로 인한 과실 당분 증가는 결코 반갑지 않은 일이다. 또 알코올 도수가 너무 높으면 와인의 섬세한 풍미가 드러나지 않아 본래의 맛을 느끼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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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난화가 진행되면서 많은 와인이 당분 함유량이 많은 포도 품종에 가까워지고 있다. 만약 와인의 맛이 단순히 당분과 산의 균형만으로 결정된다면 산의 분해와 당분 축적이 진행되어 포도가 너무 달아지기 전에 수확하는 등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다. 

그러나 와인의 풍미에는 안토시아닌이나 탄닌 등 2차 화합물의 균형도 중요하기 때문에 농가들은 2차 화합물은 적지만 당분량이 최적인 단계에서 포도를 수확하거나 2차 화합물은 풍부하지만 당분이 너무 많은 단계에서 포도를 수확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지에 내몰리게 된다. 

와인의 풍미 변화는 소믈리에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와인을 테이스팅해 포도 품종·생산연도·생산지역 추정 등을 요구하는 마스터 소믈리에 인증시험이 더 어려워졌으며 나이든 소믈리에 중에는 현 시점에서 테이스팅 시험을 본다면 합격이 어렵다고 인정하는 사람도 있다.

최근에는 기후변화로 산불 발생도 빈번해졌다. 포도 과실이 산불 연기에 노출되는 것 역시 큰 영향을 미친다. 나무가 불타면서 발생하는 휘발성 페놀성 성분은 포도 표피에서 내부로 침투해 포도 당분과 결합해 배당체(글리코시드)라는 화합물이 된다. 글리코시드 자체는 무취지만 알코올 발효 과정에서 분해되면 페놀성 성분 때문에 독특한 향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생산자에게 큰 위협이 된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데이비스 캠퍼스의 와인 화학자인 애니타 오버홀스터(Anita Oberholster) 박사를 찾은 아스 테크니카의 라이터들은 연구소에 보관된 '일반 와인'과 '연기에 노출된 포도로 만든 와인'을 마시고 비교하는 실험을 했다.

비공식적인 블라인드 테스트 결과 와인 아마추어인 라이터도 연기에 노출된 포도로 만들어진 와인을 구별할 수 있을 정도였다. 라이터들은 "캠핑파이어와 같은 스모키향이 있다" "목 안쪽에 타는 냄새를 느꼈다" "불탄 나무를 마시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 생존 위해 활로 모색하는 와인산업

와인 전문가와 생산자들은 기후변화에 따른 풍미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프랑스 남서부 보르도 일대에서 생산되는 보르도 와인은 오랜 세월 와인 제조에 사용할 수 있는 포도 품종을 레드와인용 6종과 화이트와인용 8종으로 제한해 왔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와인의 풍미 변화가 문제가 되면서 보르도 와인위원회는 2021년 레드와인용 4품종, 화이트와인용으로 2품종 사용을 승인했다. 이들 품종은 보조적인 사용 목적으로 최종 블렌드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10% 이하로 억제했지만, 전통이나 문화를 중시하는 와인 제조에 있어서는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기존과는 다른 품종을 접목하거나 태양의 근적외선 일부를 차단하는 필름으로 포도나무를 보호하는 등 다양한 자구책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산불 연기로 스모크 테인트(Smoke Taint)가 발생한 와인이라도 적절한 와인과 블렌드해 당분을 보충하고 시중에 유통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맛을 개선하는 노력도 이루어지고 있다. 

보르도 생떼밀리옹에 위치한 포도밭  ⓒ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출처/Wikimedia Common

저명한 와인 생산자인 앤디 벡스토퍼(Andy Beckstoffer)는 스모크 테인트 와인을 사용한 블렌드와인에 대해 "200달러 와인은 될 수 없지만 40달러 와인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기후변화 속에 소비자의 와인 이탈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나파와 보르도 레드와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지난 60년간 와인 신용등급이 오히려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와인 품질이 17.3도의 평균 생육온도에서 최고에 이를 것이라는 이전 예측을 뒤엎는 것으로 와인 생산자의 노력으로 기후변화에 대처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나파의 와인 생산자인 스티브 마티아슨은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기적으로는 우리의 학습 속도가 기후변화의 속도를 웃돌고 있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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