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unsplash

[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 미 식품의약국(FDA)은 2003년부터 소아·청소년이 항우울제를 복용할 경우 자살 사고와 행동의 위험을 증가시킨다고 경고하고 있다. 또 이러한 내용의 자살위험 경고 문구(black box warning)를 2005년부터 모든 항우울제 복약설명서에 의무적으로 삽입하도록 조치했다. 

호주 비영리 매체 더 컨버세이션은 "해당 경고문이 항우울제 패키지에 기재되고 뉴스 등을 통해 퍼진 결과, 오히려 아동·청소년의 자살률 증가로 이어졌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매체에 따르면 이번 연구를 주도한 하버드 의과 대학 스테펜 소우메라이(Stephen Soumerai) 교수와 펜실베니아 대학 로스 코펠(Ross Koppel) 교수는 30년 이상 환자 안전과 연관된 건강 정책의 영향에 대해 조사해 온 전문가들이다. 

소우메라이 교수 연구팀이 2013년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FDA의 약물 경고는 생명을 위협하는 부작용을 막는 역할을 하지만, FDA가 시행한 경고 중 3분의 1은 필요한 케어 부족 및 기타 부작용을 초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연구에서는 FDA의 항우울제 경고문 내용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당시 연구에서는 미 질병예방관리센터(CDC)가 관리하는 WONDER 데이터베이스에서 1990년부터 2017년까지 미국 젊은층의 자살 관련 데이터 분석이 이루어졌다.

조사 결과, FDA가 경고를 붙이기 전인 13년간 안정된 상태를 보이며 소폭의 감소 경향을 보인 젊은 층의 자살률은 2003년 후반 경고를 한 직후부터 역전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항우울제 패키지에 직접 경고문을 기재하게 된 2005년 이후 6년간은 이전보다 6000명이나 자살자가 증가했다. 경고 대상 외의 연령층에서도 자살률은 증가했지만, 증가 속도는 젊은층보다 훨씬 낮았다.

아래 그래프의 녹색선은 'FDA의 경고가 나오기 전의 자살률'을, 파란선은 'FDA 경고가 나온 후의 자살률'을 보여준다. 경고 전에는 감소 경향에 있던 자살률이 경고가 나온 시기를 기점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The Conversation

연구팀은 또한 FDA 경고가 많은 환자와 부모, 의사들의 처방과 복용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1100만명의 청소년 정신건강을 추적한 연구에서 2003년 FDA의 경고 직후 항우울제 처방을 포함해 우울증 치료를 위해 의사를 방문하는 청소년의 수가 30~40% 감소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아래 그래프는 우울증으로 의사 진찰을 받는 사람의 비율을 나타낸 것이다. 빨간선은 백인, 파란선은 흑인, 녹색선은 라틴계를 나타낸다. 모든 인종에서 FDA 경고가 나오기 전에는 진료 비율이 증가 경향을 보였지만, 경고 이후 현저하게 저하된 것으로 확인된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The Conversation

또, 연구팀은 우울증 진찰이 감소함과 동시에, 수면제 등 처방약 중독을 경험하는 젊은층이 증가했다고도 지적했다. 항우울제 이외의 처방약을 이용한 자살은 젊은층 자살의 흔한 방법이며, 이 역시 FDA 경고로 인해 자살이 증가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 중 하나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2018년에는 실제로 경고 때문에 항우울제 복용을 거부한 두 환자가 자살을 시도한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다. 두 사람은 다행히 처방된 항우울제 복용을 시작했고 심리요법과 병행해 증상을 완화할 수 있었다.

소우메라이 교수는 "FDA 경고 이외에도 젊은층 자살률을 상승시킨 요인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지만, FDA의 경고 시작과 동시에 치료 감소 및 자살률 증가라는 복수 결과가 나타났다는 점에서 우연의 일치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항우울제에 대한 FDA 경고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증거는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저작권자 © 데일리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