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 / 김진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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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포스트=송협 선임기자] “코로나 최전선에서 고생하는 당신들 덕분에, 의료진 덕분에 라는 말 대신 몸도 마음도 지친 간호사들의 처우 좋아져야 한다. 개선해야 한다. 말 대신 실천을 해주세요. 저희도 사람입니다.” (코로나19 전담 병원 간호사)

인류 최악의 재앙으로 꼽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이하 코로나19) 창궐 2년째 접어들고 있습니다. 처음 이 악몽을 만났을 때만 하더라도 일관되지 않은 방역 매뉴얼 탓에 혼란과 함께 희생도 많았습니다.

송협 선임기자
송협 선임기자

최악의 정점을 찍고 고난의 행군을 통해 조금씩 매뉴얼이 안착되며 일사분란하게 안정된 방역을 실시하고 있는 국내 코로나19 방역 체계를 일궈낸 자양분은 입만 살아 치적에 눈이 번쩍거리는 정치인도 아닙니다.

K-방역의 우수성을 강조하며 “의료진 덕분에”라며 립서비스를 남발하는 대통령과 정치집단의 눈치만을 살피며 보좌진들이 일관되게 정리해준 성명서를 앵무새처럼 읽어 내려가는 임상 경험 전무한 부처(部處)의 장(長)도 아닙니다.

그들이 온갖 스포트라이트 번쩍이는 브리핑실에서 화려한 입담을 자랑할 때 감염이 도사리고 있는 코로나19 방역 최전선에서 지친 몸을 이끌고 사투를 벌였던 의사, 간호사, 그리고 119 구급요원들이었습니다.

연일 40도를 웃도는 살인적인 무더위 속 실낱같은 공기 조차 통하지 않는 방역복을 걸친 간호사들의 몸은 이미 땀에 절어있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습니다. 끝을 알 수 없는 최악의 환경에 내던져진 간호사들은 누구처럼 공적(功績)을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주판알 튕기듯 공과(功過)를 계산하는 것조차 그들에게는 사치였으니 말입니다.

천근만근 무너져 내릴 듯이 지친 몸을 간신히 지탱하면서도 죽음의 사선에서 헤매고 있는 확진자와 검체 검사를 위해 연휴에도 몰려드는 사람들을 위한 소명이 무엇보다 우선됐기 때문입니다.

멀리서 바라볼 때 마치 슈퍼우먼 같았던 코로나19 방역 최전선의 그녀들 역시 사람이었습니다. 성질 까다로운 환자의 말도 되지 않은 투정을 ‘소명’이라는 의료진 본연의 자세로 받아줘야 했고 화장실 갈 시간을 아껴 잠시 쉬고 있노라면 환자들이 주문한 택배까지 전달하는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입맛 까다로운 확진 환자의 반찬 투정에 식사 시간을 놓친 그녀들은 눈물을 애써 삼켜야했고 인성 부족한 환자를 대할 때면 갖은 냉대와 욕설도 감내해야 했던 그들을 우리는 K-방역의 전사라는 수식어를 붙였고 “의료진 덕분에”라는 진정성은 1도 찾아볼 수 없는 가식의 시선을 던지곤 했습니다.

그렇게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과 진료를 위해 국내 코로나19 창궐 시작부터 국민의 곁에서 자신을 헌신하고 분투했던 K-방역 전사들인 간호사들이 ‘실질적인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총파업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일각에서는 그들의 집단행동과 총파업 예고를 두고 ‘무책임한 집단 이기심’이라고 비꼬기도 합니다. 마치 “너희의 당연한 소명인데 왜?”라는 물음표를 남기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환자를 돌보고 검체 검사를 통해 확진자를 찾아내야 하는 의료진들이 파업을 하면 더 큰 재앙의 불씨가 되는 것 아니냐?” “고생한 만큼 돈도 많이 받고 있는 것 아니냐?”라는 지적도 팽배합니다.

코로나19 확진세가 확대되고 그 기간도 늘어나면서 지친 현장 간호사들의 처지를 제대로 읽어내지도 못하면서 말입니다.

주말도 연휴도, 심지어 휴가도 포기한 채 숨 쉬는 것조차 버거운 방역복을 걸치고 다양한 성향의 확진 환자들을 살피고 있는 그들이 처한 현실이 얼마나 고통이 가중되고 있는지 제대로 헤아리지도 못하면서 말입니다.

한 의료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가 이렇게 호소했습니다. “우리는 작년에도 그리고 어제도 오늘도 변함없이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 힘들고 지치고 있습니다. 잠을 실컷 자보고 싶다는 것이 언제부터인가 꿈이 됐습니다.”

국내 코로나19 감염증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던 지난해만 하더라도 정부는 공공의료와 보건의료 인력에 대한 확충, 그리고 처우 개선을 반복적으로 강조했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재앙 앞에 제일 앞서 대응하고 나서고 있는 만큼 정부가 이에 따른 개선을 약속했지요.

하지만 시간이 거듭될수록 정부의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끊이지 않고 속출하는 확진자와 검사자들을 상대하느라 심신이 지친 상태의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리는 간호사들은 이제 하나둘 지옥과 같은 현장을 벗어났거나 벗어나려 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연장으로 외출에 제한적이거나 사적 모임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우리 일반인들도 견디기 힘든 일상인데 하루에도 수백 수천 명의 검사 대상자들과 확진 환자들을 상대하는 간호사들의 고충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이 같은 악조건의 현실을 호소하고 공공의료 및 보건의료인력 확충을 요구하며 정부와 병원 등을 상대로 교섭에 나섰지만 정부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번아웃을 넘어 패닉 상태에 놓인 이 의료진들도 사람입니다.

힘들고 지치고, 졸립고 배고프며 권리를 주장하며 택배 심부름, 화장실 청소, 그리고 불안정한 심리 상태에서 쏟아낸 구역질 같은 욕설에 심각한 인권이 훼손되고 상처받는 인간입니다.

그들의 총파업 선언에 쌍수를 들고 환영하거나 지지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가 한여름 폭염에도 불구하고 땀에 젖고 끼니를 거르고 욕설에 시달리고 있는 소중한 의료 인재들을 지켜야 할 때입니다.

코로나19 환자를 케어하고 있는 올해로 20년 차 간호사의 한 마디가 귓전에서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제발 우리를 소모품 취급하지 마세요. 국가와 국민이 아쉬울 때 ‘너희 덕분에 우리가 안전하게 살고 있어 고맙다.’는 말 대신 방역수칙 철저히 지켜주시고 인력 충원과 현실적인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나설 수밖에 없는 우리의 입장을 헤아려 달라”는 그 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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