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 “죄송하다” 사과하면 관직을 제수(除授)하는 ‘인사청문회’
[저널리즘] “죄송하다” 사과하면 관직을 제수(除授)하는 ‘인사청문회’
  • 송협 선임기자
  • 승인 2020.12.29 17: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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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포스트=송협 선임기자] #자신을 ‘학자’라고 참칭(僭稱)하는 자들을 보면 손으로 물 뿌리고 빗자루질은 하지 못하면서 입으로는 천리(天理)를 담론하며 헛된 이름이나 훔쳐 사람들을 속이려고 한다.

조선 명종(10년) 당시 퇴계 이황과 더불어 영남 유학의 거두로 추앙받던 실학자 남명 조식 선생이 이황에게 보낸 서신 ‘담퇴계서’에 나오는 구절이다.

조식 선생은 서신을 통해 글을 깨쳐 감당치 못할 벼슬에 올랐으면서도 백성의 고혈을 빨고 기생하는 무능하고 부패한 관료들을 겨냥해 “近見學者手不知灑掃之節 而口談天理 計欲盜名 而用以欺人(근견학자 수부지쇄소지절 이구담천리 계욕도명 이용이기인)”이라고 비판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공자의 서(書)를 정성스럽게 읊으며 스스로 ‘학자’를 칭하고 있지만 그 사람 됨됨이는 시정(市井)의 잡배(雜輩)와 같아 언행이 불량할 뿐 아니라 이론에는 밝으나 실천에는 어두워서 오히려 백성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대목이다.

각설(却說)하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종료됐다. 물론 대다수 국민과 여론의 거센 비판에도 불구하고 집권 여당의 만장일치로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이 통과된 채 말이다.

“위탁 업체 직원(김군)이 실수로 죽었다. 걔가 조금만 신경 썼으면 아무일도 없는 것처럼 될 수 있었다.” 집권 여당 찬스를 바탕으로 김현미 장관 바통을 잇게 된 변창흠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이 과거 구의역에서 일하다 사고로 숨진 19세 청년 노동자 김군을 향해 내뱉은 독설이다.

“죄송하다”…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국회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빗나간 언행에 사과를 표명한 변창흠 후보자의 모습에서 진정성을 찾아볼 수 없다.

할 수 있는 한 가장 가엾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이 곤욕스러운 시간과 청문회가 끝나 오매불망 고대하던 ‘감투’를 머리에 얹고 국토교통부의 수장에 올라서야겠다는 집념만 가득찼을 뿐이다. 자신이 SH공사 사장 시절 무심코 내뱉은 날카로운 비수가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흔(傷痕)을 새긴 것은 머리에서 지운 채 말이다.

그리고 끝내 목적을 달성한 변 장관은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의 애정 어린 핀잔에 이렇게 읊조렸다. “다 제 부덕의 소치입니다.” 참으로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국회 인사청문회는 후보자의 모든 신상을 털어 과거의 부적절했던 언행들을 공개하고 지적하는 자리다. 하지만 단 한 명의 후보자도 자신의 과거와 현재 드러난 치부에 대해 스스로 물러난 적이 없다.

박근혜 정부 당시에도, 이명박 정부 당시에도, 또 노무현 정부 당시에도, 그리고 ‘상식’을 강조한 문재인 정부에도 자신의 치부에 책임을 지고 용퇴하거나 추천을 취소하는 사례를 단 한 번도 본 기억이 없다.

진영 논리에 의해 당락이 결정되고 있는 식물 수준의 국회 인사청문회를 보면 차라리 해산하는 것이 옳지 않나 싶다. 인사청문회만 열리면 그 어떤 죄를 짓고도 벼슬길에 오르다 보니 차라리 후보자 검증이 아닌 장·차관 등용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입으로는 죄송하다면서도 감투는 포기하지 않는 이 무서운 권력 지향주의자들이 이끌어 갈 대한민국의 미래가 상상만 해도 끔찍한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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