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연구팀, 재래종 꿀벌의 도구 이용 첫 확인
꿀벌, 장수말벌 봉군 침입에 동물 배설물로 맞서

ⓒ 데일리포스트 이미지 출처=Heather R Mattila / Plos One

[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 높은 정보 처리 능력을 가진 꿀벌은 익힌 기술을 다른 개체에게 알려주거나, 수를 나타내는 ‘기호’와 개념상의 ‘수’를 결합해 인식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앞선 연구로 확인된 바 있다. 

이러한 꿀벌이 말벌 등의 공격에 맞서 다른 동물 배설물을 벌통 주변에 발라 '집'을 보호한다는 사실이 연구를 통해 처음으로 밝혀졌다. 국제 연구팀이 이번 연구를 진행했으며 해당 논문은 국제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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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서 진화한 꿀벌 종류인 '재래종 꿀벌(Apis cerana)'이 천적에 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 벌통에 침입한 장수말벌을 공처럼 둘러싼 후 진동으로 온도를 상승시켜 열로 죽인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다. 새로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꿀벌은 이러한 대항책 외에도 다른 동물의 배설물을 이용하는 일명 '똥칠 전략'으로 말벌에 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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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연구는 캐나다 연구자들이 베트남 양봉장을 방문했을 때, 벌통 입구 근처에 갈색 얼룩을 목격한 것이 계기였다. 연구자가 이것이 무엇인지를 물었을 때, 꿀벌이 모은 물소 배설물이라는 답을 들었다. 이 재래종 꿀벌이 가축 배설물을 모아 벌집 주변에 칠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연구팀은 베트남 연구팀과 협력해 조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우선 연구팀이 베트남 양봉업자 72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63명이 "벌집 입구 근처에 동물 배설물로 만들어진 얼룩이 있다"고 답했다. 벌통에 동물 배설물이 칠해져 있다고 답변한 양봉업자는 모두 재래종 꿀벌을 키우고 있었으며, '양봉꿀벌'(Apis mellifera)만 사육하는 5명의 양봉업자는 모두 벌통에 배설물 얼룩은 없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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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이 청취 조사를 진행한 많은 양봉장은 재래종 꿀벌이 동물 배설물을 벌통에 바르는 이유가 말벌이 벌통을 공격한 것에 대한 반응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연구팀이 재래종 꿀벌의 벌통을 관찰한 결과, 말벌 일종인 '베스파 소로르'(Vespa soror)가 벌통을 공격하는 동안 꿀벌은 다른 동물의 배설물을 찾아 작은 덩어리로 뭉친 후 벌통으로 가져와 입구에 묻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베스파 소로르 보다 몸집이 작고 집단 공격성이 낮은 장수말벌 일종인 '베스파 벨루티나'(V. velutina)에는 이같은 반응을 나타내지 않았다. 

베스파 소로르는 인도·태국·베트남·중국 남부에 서식하는 장수말벌의 근연종으로 이 지역에 서식하는 재래종 꿀벌에게 위협적인 존재다. 베스파 소로르를 포함한 일부 말벌은 벌집을 습격해 단 몇 시간 만에 수천 마리의 꿀벌을 죽이거나 유충을 둥지로 가져갈 뿐만 아니라, 때로는 벌집 자체를 빼앗기도 한다.

아래 그래프는 세로축이 벌통에 칠해진 동물 배설물로 만든 덩어리의 수, 가로축은 시간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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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선은 베스파 소로르의 공격을 받은 벌통이고, 점선이 베스파 소로르의 공격을 받지 않은 벌통이다. 이를 비교하면 베스파 소로르의 공격을 받은 벌통이 일관되게 칠해진 대변이 늘어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베스파 소로르의 공격이 끝난 후에도 한참 동안 배설물이 많은 상태가 유지된다. 

또 연구팀이 베스파 소로르에서 채취한 추출물을 둥지 입구 근처에 둔 결과, 재래종 꿀벌은 실제 베스파 소로르에서 공격을 받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동물 배설물을 벌통에 바르기 시작했다. 또 꿀벌이 벌통에 바른 배설물은 물소뿐 아니라 조류 및 기타 포유류의 배설물도 포함돼 있었다. 

실제로 똥칠 전략의 효과에 대해 연구팀이 측정한 결과를 나타낸 것이 아래 그래프다.

1) 밝은 회색: 대부분 배설물이 칠해져 있지 않은 경우 2) 진한 회색: 중간 정도로 배설물이 칠해진 경우 3) 검정색: 많은 배설물이 칠해진 경우를 나타내며, 왼쪽에서 오른쪽 순으로 ▲베스파 소로르가 벌통을 방문한 빈도 ▲베스파 소로르가 벌통에 앉은 빈도 ▲베스파 소로르가 벌통 입구에 앉은 빈도 ▲베스파 소로르가 벌통의 입구를 공격하려고 한 빈도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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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또는 많은 배설물이 칠해진 경우에 베스파 소로르의 공격이 감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배설물이 중간 이상 칠해진 벌통은 그렇지 않은 벌통과 비교해 베스파 소로르가 벌통 입구에 앉은 빈도가 77~81% 감소했고, 벌통 입구를 공격하는 빈도는 94% 감소했다.

또 연구팀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재래종 꿀벌이 동물 배설물을 벌통에 바르는 행동은 베트남 전역뿐만 아니라 중국·태국·부탄·네팔 등에서도 나타났다. 동물 배설물이 베스파 소로르를 물리칠 수 있는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배설물에 들어있는 화학 물질이 공격을 억제할 가능성과 베스파 소로르가 집단 공격의 대상으로 벌통에 표시한 마킹을 교란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연구팀은 추정하고 있다. 

연구팀은 이번에 관찰된 배설물을 수집하고 적을 물리치기 위해 이를 벌통에 바르는 행동은 꿀벌이 도구를 사용하는 최초의 사례라고 강조했다. 연구팀의 헤더 마틸라(Heather R Mattila) 미국 웰슬리 칼리지 교수는 "이는 '외부에서 물체를 수집·보존·조작해, 본래의 존재 이유와는 다른 방법으로 적용하는' 도구의 사용에 필요한 요소를 충족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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