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포스트=인도 LG화학 가스누출 사고
데일리포스트=인도 LG화학 가스누출 사고

[데일리포스트=손지애 기자] "입안에서 가스 맛이 났다. 정말 무서웠다."

지난 7일 새벽 인도 남부 안드라프라데시주 비사카파트남의 LG화학 계열 LG폴리머스인디아(이하 LG폴리머스) 공장에서 스티렌 가스 누출사고가 발생했을 당시 라마나 씨와 그의 가족들이 차로 대피하면서 뉴욕타임즈에 사고를 알리며 이 같이 말했다. 

사고가 발생한 공장에서 2km 안팎에서 거주하고 있던 라마나 씨는 지난 목요일 아침 잠에서 깨보니 흰 안개가 끼어있었고, 기침과 함께 눈은 타들어 갈 듯이 고통스러웠다고 전했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엎드려 누워있고 그 옆에는 핸드폰이 떨어져있고, 흥분한 여성이 쓰러진 다른 여성의 가슴을 세게 때리고 있었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개 한마리가 다리를 흔들거리며 일어서려고 하지만 이내 주저앉았다. 

이날 가스누출 사고로 이곳 주민 12명이 목숨을 잃었다. 또 주민 수천여명이 건강 이상 증상을 호소하며 입원 치료를 받는 등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뉴욕타임즈는 많은 환자들이 구토 증상과 함께 신경계에 이상을 보였고, 현재 10여명은 심각한 상태에 있다는 현지 의사들의 말을 인용했다.

국가재난관리국(NDMA)은 현장 상황을 담은 동영상들을 토대로 오토바이를 타고 현장을 벗어나려던 이들이 어지럼증 때문에 배수로에 빠져 숨지거나, 한 여성이 건물 2층에서 떨어졌다고 전했다.

사고가 발생한 LG폴리머스인디아는 전신 LG화학이 1996년 인수한 인도 최대 폴리스티렌(PS) 수지 제조업체 '힌두스탄 폴리머'다. 1997년 사명을 바꾼 LG폴리머스는 공장 규모 66만㎡, 근무 직원은 300여명에 이른다. 

인도 당국에 따르면 사고는 새벽 2시 30분 정도에 발생했고, 당시 코로나19 봉쇄 조치로 닫혀 있던 원료 탱크가 6주만에 재가동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독성 물질인 스티렌 가스가 누출된 것으로 보고 있다.

식품 보관 용기, 포장재, 인조 대리석, 바닥재 등의 생산에 널리 쓰이는 스티렌은 흡입시 코와 목이 자극돼 기침, 호흡곤란, 폐부종(폐에 액체가 고여 호흡이 곤란해진 상태) 등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많은 양에 노출되면 두통, 메스꺼움, 구토, 어지럼증 등을 포함한 `스티렌 중독`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며, 심한 경우 심장 박동이 불규칙해지거나 혼수상태에 빠질 정도로 위험하다. 

인도매체인 인디언익스프레스는 LG화학의 인수전 1982년부터 1997년까지 힌두스탄 폴리머를 운영했던 인도 맥도웰사가 스티렌과 알코올 증류 제조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는데 제조공장이 "인구가 밀집한 지역과 너무 근접하다"는 것이 이유였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LG화학이 인수 후 폴리스티렌과 발포폴리스티렌 제조를 재개하며 2001년 11월과 2002년 5월 각각 제조공장의 설립과 운영 허가를 받았다고 해당 매체는 보도했다. 

또 회사는 2019년 제조공장의 확장안을 발표할 당시, 폴리스티렌과 발포폴리스티렌 제조에 '유해화학물질'이 사용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환자, 어린이, 노인 등 취약한 사람들의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모든 안전 규정을 준수할 것이고 환경이나 인체에 전혀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확언했다고 언론은 보도했다. 

그러나 LG폴리머스가 장담한 '안전규정 의무'는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비사카파트남의 한 고위관리는 가스 누출 원인에 대해 "코로나 봉쇄기간 동안 직원의 정비작업 미숙으로 인해 스티렌 가스가 누출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현지 언론들은 코로나19로 인해 공장이 폐쇄된 동안, 스티렌가스가 적절한 온도에 저장되지 않아 저장실 내 압력이 증가해 밸브가 파손되면서 누출이 된 것이 결정적인 사고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또 일부 노동조합 관계자들은 사고 발생 공장에서 경보음이 작동하지 않아서 더 많은 사망자가 나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 LG폴리머스의 운명은?

9일(현지시간)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인도환경재판소는 이번 사고와 관련해 LG폴리머스인디아 측에 손해배상에 대비한 5억루피, 약 81억원의 공탁금을 명령했다. 회사 경영진도 독성물질 관리 소홀, 과실치사 등 혐의로 입건된 상태다. 

또 인도 환경부는 "LG폴리머스 측이 지난 3월 설비 확장 허가 신청을 했는데 승인이 떨어지기 전에 가동이 이뤄졌다”며 “이는 환경 규정 위반”이라고 지적하면서 추가 민·형사 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9일(현지시간) 피해자 가족 등 주민 300여명이 LG폴리머스 공장 앞에서 집회를 열고 정부에 공장 폐쇄 또는 이전을 촉구했다. 몇몇 시위자들은 정문을 뛰어넘어 공장 내로 진입하기도 했다.  

LG폴리머스는 현재 비상대책위원회를 가동하고 사고 현황과 대책 수립 등을 추진하고 있다. 

회사는 유가족과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약속했다.

"최우선으로 유가족과 피해자분들을 위해 가능한 모든 지원이 보장되도록 하겠다. 전담조직을 꾸려 사망자 장례지원, 피해자 의료·생활 지원을 진행할 수 있고, 심리적 안정을 위한 지원뿐 아니라 향후 지역사회를 위한 중장기 지원사업도 개발·추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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