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일리포스트 이미지  출처=日 Abema 뉴스 화면 캡처

[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65)의 희대의 탈주극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도주 전모가 속속 드러나며 일본 열도가 발칵 뒤집혔다.  

곤 전 회장은 일본에서 유가증권 보고서 허위기재와 특별배임 등 경제범죄를 일으켜 사실상 가택연금 상태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는 지난 2018년 두 차례 구속됐고, 총 160억원의 보석금을 내고 작년 3월 풀려난 뒤 가택 연금 상태에서 재판을 앞두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29일 곤 전 회장은 일본 사법당국의 감시망을 뚫고 마치 영화의 주인공인양 레바논으로 유유히 탈출했다. 

◆ 영화 같은 도주 “대형 수하물 상자에 숨어 출국” 

일본 현지 언론과 외신 등의 보도를 종합해보면 그의 행적은 이렇다. 그가 자취를 감춘 29일 당일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한 곤 전 회장이 도쿄의 자택에서 오후 2시 30분 경 홀로 빠져나오는 모습이 CCTV에 포착된다. 이후 그는 신칸센을 타고 오사카 간사이공항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날 밤 11시 오사카 간사이공항에서 개인용 비행기를 통해 터키 이스탄불로 도주, 이스탄불에선 다른 개인용 비행기에 탑승해 곤 전 회장의 고국인 레바논으로 이동했다.

일본 경찰은 미군 특수부대 그린베레에서 활동했던 경험이 있는 보안·탈출전문가 등 2명이 동행해 그가 1미터가 넘는 대형 음향장비 상자에 숨어 개인용 비행기를 탄 후 탈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곤 전 회장은 일본 탈주를 도운 사람들과 오사카에서 터키 이스탄불까지 함께 이동했다. 해당 상자에는 숨을 쉴 수 있는 구멍이 뚫려있었고 이동을 위한 바퀴도 있었다. 그의 탈출을 도운 인물 중 한명인 마이클 테일러는 2009년 탈레반에 의해 구속된 뉴욕타임스 기자의 탈출도 도운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카를로스 곤 회장이 도주에 이용한 개인비행기
카를로스 곤 회장이 도주에 이용한 개인비행기 기종 

터키 이스탄불을 경유해 레바논까지 이동한 비행기에는 터키 항공기 운영사 MNG 직원과 동행했다. 압둘하미트 귈 터키 법무장관은 "법원이 조종사 등 관련 용의자 7명 가운데 5명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고 밝혔다. 탈출에 관여해 체포당한 한 용의자는 부인과 자녀에게 해를 가하겠다는 협박을 당해 협력할 수밖에 없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곤 전 회장이 숨어 국외로 탈출했다고 알려진 대형 케이스(FNN뉴스 화면 캡처) 

일본인들이 특히 분개하는 부분은 무엇보다 자국의 허술한 출입국 관리체계다. 기본적인 수화물 엑스레이 검사조차 이루어지지 않아 탈출을 사전에 막지 못했다는 비난 여론이 연일 들끓고 있다. 

NHK는 지난 5일 공항관계자의 “상자가 꽤 크고, 엑스레이 검사 기계에 넣기 힘들어 검사를 진행하지 않았다”는 발언을 보도했다. 개인용 비행기는 운항 회사 혹은 기장의 판단 하에 때로 수하물 검사가 생략되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케이 신문은 다른 상자엔 스피커가 있었으며, 수하물 검사 시 음향기기라고 주장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이어 “해외 비즈니스 확대와 부유층의 방일 증가에 따라 발착 제한을 완화하고 있는 일본의 '허점'을 교묘하게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 日 출국심사 강화 ‘뒷북’...허술한 감시망에 쏟아지는 비난   

곤 전 회장이 아무런 제지 없이 집을 나선 데다, 공항에서의 기본적 절차가 무시된 만큼 일본 정부의 감시망이 허술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항을 무사히 통과한 곤 전 회장은 개인용 비행기를 통해 터키 이스탄불에 도착, 또 다른 소형비행기를 타고 30일 레바논 베이루트에 도착했다. 

일본을 당황시킨 소식은 이뿐만이 아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곤 전 회장은 탈출 전 한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와 접촉해 일본 사법당국의 탄압을 받아온 본인의 실화를 영화로 만들고 싶어 했으며, 특히 결말이 ‘놀라울 것’이라고 예고했다고 알려진다. 

곤 닛산 전 회장이 머물고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레바논 베이루트 주택
곤 전 회장이 머물고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레바논 베이루트 주택

세계적으로 체면을 구긴 일본 사법당국은 곤 전 회장이 사법 절차를 무시했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며 부랴부랴 출국심사 강화 등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모리 마사코(森雅子) 일본 법무상은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의 행동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며, 일본은 출입국 검사를 한층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도쿄 지방 검찰청 역시 5일 "국외 도피는 사법 절차를 무시한 범죄로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는 강한 비판 성명을 내놨다.  

일본 주간지 ‘재팬비즈니스프레스(JBpress)’는 4일 기사에서 “재판에서 패소할 경우 형기를 마칠 때까지 10~15년은 걸리기 때문에 모국인 레바논행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이번 일본 탈출을 위해 시간을 들여 준비한 것은 틀림없지만, 지난 크리스마스에 아내와 자유롭게 연락하지 못하도록 조치한 점과 당초 올해 4월로 예정된 공판 전 절차 종료가 1년 연장될 가능성에 대한 분노가 탈출을 결심한 직접적 계기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곤 전 회장의 아내 캐롤 곤은 지난해 일본 사법당국이 피고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유엔 인권위원회에 제소한 바 있다.  

도쿄 구치소를 나오는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2019.04) 

닛산을 위기에서 구원하며 한때는 '구세주'로 칭송받던 곤 전 회장, 이제는 일본 국민의 공분을 사며 희대의 탈출극 주인공으로 회자되고 있다. 

곤 전 회장은 출국 직후 "유죄가 전제되고, 기본적 인권이 무시되는 잘못된 일본 사법제도의 인질이 될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8일 오후 10시(한국시간 오후3시) 레바논에서 자신의 입장을 밝히겠다며 기자회견을 자처했다. 곤 회장이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털어놓을지 지켜봐야겠지만, 일본 사법 당국은 피고인 감시에 소홀했다는 비난 여론과 더불어 당분간 곤혹스러운 상황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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