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소미아 종료 연기 이틀 만에 파열음
韓원칙과 포용 외교의 판정승 vs. 日퍼펙트 게임
각자 외교 판정승 주장...후속협상 험로 예상

(출처: 데일리포스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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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조건부 유예와 관련해 일본 수출규제 관련 국장급 대화를 재개하기로 한 양국이 합의 48시간 만에 서로 ‘외교 판정승’ 논리를 펼치며 치열한 여론전에 돌입했다. 

일본 수출규제가 촉발한 한·일 갈등이 반일·반한이라는 국민감정을 자극하는 상황에서 양측의 엇갈린 주장은 여론을 의식한 기싸움이라는 해석이다. 갈 길이 먼 향후 협상에 가시밭길이 예고된다.    

22일 지소미아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는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
22일 지소미아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는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

우리 정부는 지소미아 연장 배경에 일본 수출규제 재검토와 ‘화이트리스트’ 한국 배제에 대한 원상복구가 연관돼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청와대가 미국 측의 거센 압박에 굴복한 것이며 여기에는 일본의 배후 노력이 자리한다고 선전하고 있다. 

특히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일본은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았다”는 발언은 이번 합의를 자신의 외교 성과로 포장하고자 하는 인식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또 이는 앞으로 이어질 수출규제 관련 대화에 있어서도 일본 측이 비협조적으로 나올 공산이 높다는 의미다. 지소미아 연장 카드로 수출규제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려했던 우리 정부 입장에서도 적극적인 조치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靑 연이은 日왜곡 발언에 강공대응

청와대는 24일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미디어센터에서 긴급 브리핑을 갖고 일본 정부의 왜곡 발표에 이례적으로 강하게 반발했다.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해 일본 고위정부 지도자들의 발언에 유감을 뜻을 표한 건 ‘경고’의 의미가 강하다는 분석이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지소미아 연장과 일본의 대(對)한 수출 규제 철회와 관련한 최근 한일 양국 간 합의 발표를 전후한 일본 측의 몇 가지 행동에 대해서 깊은 유감을 표할 수밖에 없다"고 언급하며 일본의 태도를 '견강부회(牽强附會:가당치 않은 억지 주장)'에 빗대기도 했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특히 합의 직후 경제산업성 발표와 연이은 일본 당국자들의 발언, 그 과정의 언론 플레이를 조목조목 반박한 것은 청와대가 이번 사안을 얼마나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는지에 대한 반증이자 일본 측의 성과 부풀리기 식 '여론전'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작용이라고도 볼 수 있다.   
 

(데일리포스트 이미지 출처=Pixabay 제공)
(ⓒPixabay)

정 실장은 "한일간 사전 조율과 완전히 다르다. 일본의 불합리한 행동에 대해 외교 경로를 통해 지적하고 강력히 항의했고 일본 외무성을 통해 사과를 받았다"며 "이러한 내용으로 협의했다면 합의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작심 비판했다. 이어 정 실장은 “큰 틀에서 보면 우리 문재인 대통령의 원칙과 포용의 외교가 판정승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실장은 이어 “영어에 ‘트라이 미(try me:시험해 보라)’라는 말이 있다. 한쪽이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면서 상대방을 계속 자극하면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 모른다는 경고성 발언이다. 그 말을 일본에 하고 싶다”고 엄중 경고하며 일본의 의도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日 외교성과 자화자찬… 靑 발표 내용 전면 부인

한편, 한국 정부는 우리의 강력한 항의에 일본 경산성이 '사과'의 뜻을 전달했다고 밝혔지만 일본은 이를 부인했다. 요미우리신문 등 현지 보도에 따르면 외무성의 한 간부는 익명으로 “그런 사실은 없다”고 답했다. 오히려 청와대의 강한 유감 표시에 NHK 등 일부 일본 언론은 “한국 정부가 국내 비판을 피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내포돼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출처: NHK 뉴스 화면 캡처)
(ⓒ교도뉴스 화면 캡처)

또 경제산업성은 24일 한국 정부의 유감 표명에 대해 트위터를 통해 '사전에 협의한 것(すり合わせた)'이라고 밝혔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22일 일본이 발표한 수출규제 관련 발표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밝힌 데 대해 반박한 것이다.  

경제산업성 트위터 캡처
(ⓒ경제산업성 트위터) 

그간 지소미아 조건부 연기와 관련해 일본 보도는 한국 측의 양보를 강조하는 내용이 대다수를 이뤘다. 일본 정부 관계자의 ‘퍼펙트 게임’ 발언이나 미 국방부가 부인했음에도 주한미군 일부 감축설로 한국을 압박했다는 보도 등이 연일 이어졌다. 

보수 성향의 요미우리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무토 마사토시 전 주한 일본대사는 “문재인 정권의 지소미아 연장은 일본의 의연한 태도에 기존 주장이 더 이상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경한 정책을 앞으로도 이어가야 한다”며 일본의 외교성과를 강조하기도 했다.   

아베 총리는 일본 정부가 매년 봄 주관하는 벚꽃놀이 행사(벚꽃을 보는 모임)에 매년 자신의 지역구 후원자를 대거 초청해 행사를 사적으로 이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큰 정치적 위기를 맞이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조사에 따르면 아베 정권의 내각 지지율은 한 달 새 7%가까이 하락하며 50%로 떨어졌다. 교도통신 조사에서는 전달 대비 5.4%포인트 하락한 48.7%를 기록했다. 

벚꽃을 보는 모임 논란으로 하락중인 아베 정권 내각 지지율
벚꽃을 보는 모임 논란으로 하락중인 아베 정권 내각 지지율(ⓒTV도쿄)

따라서 일본의 최근 여론전은 협상 결과가 일본에 유리하다는 점을 강조해 지지율 회복을 노린 정부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벚꽃을 보는 모임' 논란으로 큰 타격을 입은 아베 정권이 지소미아 합의 성과를 부풀리기 위해 언론과 합세해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한편, 청와대는 25일 “일본 쪽으로부터 한일 지소미아 관련 합의를 사실과 다르게 발표한 것에 분명히 사과했다”고 재차 강조했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 수석은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에서 “요미우리 신문은 익명의 일본 외무성 간부의 말을 인용해 ‘그런 사실이 없다’며 부인했다고 보도했다. 분명히 밝히지만 우리 측은 일본에 항의했고 일본 측은 사과했다. 일본 측이 사과한 적이 없다면 (익명이 아닌) 공식 루트를 통해 항의해 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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