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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 흡혈박쥐(학명 Desmodus rotundus)는 흡혈을 통해 얻은 피를 동료와 나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흡혈박쥐가 다른 박쥐와 피를 나누는 행동을 반복하면 ‘유대감’이 생겨 물리적 환경이 바뀌어도 함께 행동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베를린 자연사박물관 시몬 리페르거 박사가 이끄는 독일·미국·파나마 공동연구팀은 관련 논문을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 최신호에 발표했다.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게재된 연구팀 논문
ⓒ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게재된 연구팀 논문

 

흡혈박쥐는 '뱀파이어 박쥐(Vampire Bat)'로 불리지만 실제로 흡혈해 사냥감을 죽이지는 않는다. 흡혈 대상은 주로 돼지·말·소 등의 가축이며, 날카로운 앞니로 피부를 찢고 작은 상처에서 나오는 피를 핥아먹는다.  

흡혈박쥐의 큰 특징은 먹이인 피를 동료와 나눈다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먹이를 주는 것은 자연계에서 흔한 현상이지만 흡혈박쥐는 모자관계뿐 아니라 혈연관계가 아닌 동료와도 피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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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에게 먹이를 나눠주는 이타적 행동이 관찰되는 것은 흡혈박쥐가 매일 찻숟가락 1큰 술 분량의 피를 먹지 못하면 곧 굶어죽게 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흡혈박쥐는 단식 상태가 하루 이틀 계속되면 허약해지고 사흘째부터는 죽음에 이를 수 있다. 굶어죽을 위기에 처한 동료에게 피를 나눠줄 때 이미 삼킨 피를 토해 먹이는데 이 과정에서 유대관계가 형성되는 것으로 보인다.   

연구팀은 암컷 23마리의 흡혈박쥐를 야생에서 포획해 연구실에서 2년간 사육하며 관찰을 실시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붙잡은 흡혈박쥐 사이의 털고르기와 피를 나누는 빈도도 함께 증가했다. 

박쥐에게 싹튼 유대감이 실험실 내에서 사육되는 동안 일시적으로 나타난 현상인지 확인하기 위해 연구팀은 흡혈박쥐를 야생에 돌려보내 우정이 유지되는지 여부를 조사했다. 연구팀은 포획해 2년간 사육한 흡혈박쥐와 대조군인 야생 흡혈박쥐에 손가락 크기의 센서를 설치해 야생에서의 활동을 관찰했다. 아래 사진이 센서 실물과 센서를 흡혈박쥐의 등에 부착한 모습이다. 센서 무게는 2.5g 미만이다. 

ⓒ 시몬 리페르거 박사 연구팀 

센서는 흡혈박쥐의 현재위치 파악이 아닌 센서를 부착한 박쥐간 거리측정을 위한 것이다. 센서를 부착한 박쥐들이 털고르기나 피를 나누기 위해 접근하면 기록이 남는 구조다. 

조사 결과, 연구실에서 2년간 사육된 ‘유대감’이 형성된 흡혈박쥐들은 야생으로 돌아가도 지속적으로 함께 어울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에 참여한 제럴드 카터는 "이번 연구결과를 통해 흡혈박쥐 사이에도 우정과 같은 사회적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흡혈박쥐의 생태는 매우 흥미롭다"고 언급했다. 

연구팀은 앞으로 흡혈 대상인 소에 센서를 설치해 ‘흡혈을 위해 낸 상처를 흡혈박쥐끼리 공유하는지 여부’를 조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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