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레멀슨(Jerome H. Lemelson, 1923~1997)
제롬 레멜슨(Jerome H. Lemelson, 1923~1997)

[데일리포스트=정태섭 기자] 위대한 발명가와 특허 장사꾼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는 사람이 있다. 국내에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무려 605건의 특허를 낸 미국의 대표적 발명가 ‘제롬 레멜슨(Jerome H. Lemelson, 1923~1997)’이 그 주인공이다.

미국인에게는 ‘제2의 에디슨’으로 불리기도 하는 그는 창고 자동화, 산업용 로봇, 무선전화기, 팩스, VCR, 캠코더 등 현대인의 생활을 풍요롭게 만들어준 수많은 발명의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또 암 탐지 및 치료 관련 의료 기기, 다이아몬드 코팅 기술, 가전·TV 등의 분야에서도 특허를 출원했다.

그는 평소에 다양한 기술전문 잡지를 구독, 중요한 사항을 빠짐없이 기록하며 미래 기술발전 흐름을 예측한 이른바 ‘전략적 발명가’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제롬 레멜슨(Jerome Lemelson)의 발명품 노트 중 한 페이지
제롬 레멜슨의 발명품 노트 중 한 페이지

하지만 레멜슨은 자신이 가진 기술 특허권으로 기업을 상대로 막대한 특허 사용료를 청구했고, 기나긴 법정 싸움에 지친 기업들과 특허 변호사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레멜슨은 특히 바코드 및 바코드 인식 기술에 대한 특허를 취득한 후, 상품에 바코드를 부착해 제조·판매해 온 대기업을 상대로 대규모 소송을 제기해 유명세를 탔다. 

1989년 자동차 업계는 레멜슨이 발명한 바코드 시스템을 채택했고, 이후 다른 분야로 급속히 확대됐다. 미국 내 750여개 기업이 그에게 지불한 기술 사용료만 무려 15억 달러(약 1조734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레멜슨은 매달 평균 1건의 특허를 출원했다. 그의 수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것은 그가 의도적으로 미래에 나올 기술에 대한 포괄적 아이디어를 출원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공장 생산 과정을 영상을 보면서 감독하는 기술이다. 1954년 레멜슨은 자동생산 라인에 비디오를 설치한다면 사무실에서 공장을 감독할 수 있을 것이라며 관련 특허를 신청했다.

레멜슨 재단의 청소년 과학 교육 지원 사업  (출처: 스미소니언 연구소)
레멜슨 재단의 청소년 과학 교육 지원 사업 (출처: 스미소니언 연구소)

그는 기술 발전에 따라 특허 내용을 지속적으로 보완, 이후 기술 발전으로 제품이 출시되거나 출원 상황을 모르고 기업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면 특허 침해 소송을 통해 막대한 액수를 요구했다. 미국의 구 특허제도상의 허점을 이용한 그의 특허 방식을 ‘잠수함 특허(Submarine patent)’라고 하며, 아예 그의 이름을 따 ‘레멜슨 특허’라고 부르기도 한다. 

(출처: 레멜슨 재단 홈페이지)
(출처: 레멜슨 재단 홈페이지)

하지만 레멜슨은 일부 발명가들 사이에서는 ‘로빈후드’로 평가받기도 한다. 경제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그는 생전에 대기업과의 소송으로 번 막대한 로열티 가운데 10억 달러 이상을 사회에 다시 기부했다. 또 그가 1993년 부인 도로시(Dorothy)와 함께 설립한 레멜슨 재단은 혁신적인 발명가 양성을 위한 활발한 후원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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