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포스트=신다혜 IT전문기자] 종이는 ‘쿨’해졌다. 오늘날 양초나 자전거가 기술적으로는 ‘한물간’ 물건임에도 ‘쿨’하게 느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활자 인쇄기 제작사와 문구 회사들이 모든 도시에서 새롭게 등장하고 있으며, 가장 잘 팔리는 출판물 중에는 어른들을 위한 컬러링북도 끼어 있다. ('아날로그의 반격' 中)

데이비드 색스의 저서인 ‘아날로그의 반격’은 날로 진화하는 디지털 시대에서 아날로그가 지닌 가치를 알려준다. 쉽고 빠르고 직관적인 디지털, IT 기기보다는 불편하지만 손때묻은 다이어리와 LP음악, 보드게임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 책이 출간된지 어언 2년이 되어가지만 여전히 아날로그 열풍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다이어리 기업 ‘몰스킨’은 해당 책에 언급된 후로 제 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몰스킨, 창조하는 이들의 표현 수단으로 자리매김

메모하는 습관을 위해서는 ‘수첩은 비싼 것으로 고르라’는 말이 있다. 메모로 인해 탄생된 아이디어는 그 값에 몇 천배에 달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몰스킨은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검정색 표지에 특별할 것 없는 하얀 내지, 고무줄 밴드로 구성되어있지만 한 권 가격에 평균 3만원 안팎. 그럼에도 매년 1000만 권 이상 판매되며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원조 몰스킨 수첩은 200여 년 전 프랑스에서 탄생했으나 1986년 전 폐업으로 인해 잊혀졌다. 그로부터 11년 후, 이탈리아 밀라노의 출판사 모도앤모도에 의해 다시 세상에 나왔다.

당사 창업자인 세브레곤디, 파비오 로스치글리오네는 세계적으로 급속하게 증가하는 계층에 주목했다. ‘지식노동자’로 불리는 창조적인 활동 종사자들이었다. 그래서 몰스킨에 ‘아직 글자가 쓰이지 않은 책’이라는 컨셉을 적용했다.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는 표현하는 방식으로 몰스킨 노트를 이용하게끔 한 것. 노트라는 기능에 역할을 한정하지 않고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 셈이다.


또한 몰스킨의 브랜드 스토리에 예술적 기획력을 더해 그 가치를 드높였다. 19세기 예술계를 수놓은 빈센트 반 고흐, 파블로 피카소,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이 사용한 노트라는 컨셉으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몰스킨을 비롯한 노트들은 창작가들의 전유물을 넘어선지 오래다. 매해 연말 연시가 되면 서점 다이어리 코너마다 북새통을 이룬다. 물론 걔중 1월을 넘겨서 쓰는 사람은 일부일테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페이지를 넘기고 글씨를 쓰는 ‘손맛’을 그리워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러한 트렌드를 일찍이 파악한 기업들은 다양한 콜라보레이션 제품을 선보여왔다. 커피 프랜차이즈 ‘스타벅스’는 2015년부터 몰스킨과 콜라보레이션 매 연말 다이어리를 출시해왔다. 비록 지난해부터는 몰스킨이 아닌 타 브랜드와 결합상품을 내놓았지만 ‘다이어리’ 상품에는 계속 주력하고 있다.

한편 디지털 기술과 아날로그 감성을 결합한 제품들도 눈에 띈다. 아날로그는 글씨 그대로 데이터를 받아들이기 때문에 가공이 어렵고 기록 장치의 변형, 훼손 우려가 있다.

이러한 점을 보완한 ‘디지로그’ 제품들이 디지털과 아날로그 각 영역의 장단점을 상호 보완하는 것. 필기를 하면 텍스트로 변환, 디지털 장치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에 저장되는 노트부터 펜 굵기와 색깔 설정 등 다양한 효과를 지원하는 스마트 펜도 볼 수 있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디지털 기술의 발달에 따라 ‘종이의 종말’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종이와 글씨를 쓰는 행위는 인간의 문화, 경제, 정신적 근간을 이루는데에 아주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해왔다.

디지털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지금, 그들의 우려와는 달리 ‘호기심과 열정으로 움직이는 창의적 계층’ 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시대다. 기술진화가 절대적 진리는 아니라는 점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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