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고사직에 시달리는 당신은 안녕하십니까?
권고사직에 시달리는 당신은 안녕하십니까?
  • 황선영 기자
  • 승인 2016.02.19 1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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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사표 쓰게 만드는 기업사회…약발 없는 ‘노동법’

[데일리포스트=김혜경 기자] #1. 중견기업에 다니고 있는 권미연(35·가명)씨는 이번이 그의 4번째 직장입니다. 임신 상태였지만 회사에서 알게 되면 불이익을 받을까봐 계속 숨겨왔습니다.


출산예정일을 몇 달 남겨두고 회사에 출산휴가 이야기를 꺼내니 사직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대답만 돌아왔습니다. 권씨가 거부했더니 다음날 타 부서 발령과 함께 업무와 관계없는 각종 허드렛일만을 도맡아 시켰습니다.


그는 재취업이 막막해 참았지만 사측의 압박은 부서원들의 따돌림으로 돌아왔습니다. 결국 사표를 낸 권씨는 현재까지 구직활동 중입니다.


#2. 대기업 경력직 입사 5년 차인 박승경(42·가명)씨는 한 달 전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부서로 발령받아 책상에만 앉아있다 퇴근하곤 합니다. 이 부서에는 박씨 뿐만 아니라 10여명의 직원이 더 있는데 이들은 하루에 한 번씩 인사담당자와 면담을 가집니다.


인사담당자는 “아직도 분위기 파악이 안 되냐. 눈치가 있으면 알아서 사표 쓰고 나가라”는 말만 반복합니다. 억울한 박씨는 끝까지 버티겠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는 있지만 자존감은 떨어진지 오래입니다.


위의 사례들은 일부 기업들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닙니다. 이들이 겪은 일은 우리 사회에서 비일비재합니다. 느닷없는 부서 이동과 직책 강등, 일거리 주지 않기 등 이 모든 과정은 결국 하나로 귀결됩니다. 바로 ‘스스로’ 회사에서 나가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직원에 대한 해고를 이미 결정했으면서 왜 회사가 직접 자르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최근 들어 대부분의 기업은 ‘부당 해고’에 따른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권고사직’이라는 수단을 이용합니다. 부당 해고로 볼 수 없는 권고사직은 현행법 적용이 애매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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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근로 계약이 종료되는 경우는 크게 3가지로 나뉩니다. 첫 번째가 회사가 일방적인 계약해지를 통보하는 것, 즉 ‘해고’입니다. 두 번째가 사표 제출 등으로 인한 ‘사직’이고, 마지막이 사직도 해고도 아닌 ‘자동퇴직’입니다. 계약기간 만료 등이 자동퇴직에 포함됩니다.


이중 근로기준법 제 23조에 해당하는 부당 해고는 첫 번째 경우인 ‘본인 의사에 반해 사용자의 일방적 해지 통보로 이뤄지는 근로계약의 종료’를 뜻합니다.


노동법 23조 제 1항에 따르면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없이’ 해고, 휴직, 전직, 감봉, 그 밖의 징벌을 내리지 못하게 돼 있습니다. 해당 조항의 ‘정당한 이유’가 어느 수준까지 허용되는 것인가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지만 권고사직은 이보다 더 복잡합니다.


권고사직의 법적 맹점은 해고가 아닌 사용자와 근로자간 ‘합의를 본 사직’으로 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 본인이 직접 사직서를 쓰고, 일정한 액수의 퇴직금까지 받았을 경우 현행법상 부당 해고로 인정받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이 경우 사측의 ‘사직 압박 여부와 정도’를 보여줘야 하는데 그렇게 쉽지가 않습니다.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 모임’ 박성우 회장은 “소송을 시작하더라도 노동위원회는 퇴직 직전의 어떤 상황을 먼저 검토하기보다 ‘사직’ 혹은 ‘해고’라는 법리적인 판단부터 하게 된다”면서 “우선은 사표를 내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것이 법적 분쟁으로 갔을 때 유리한 판결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박 회장은 “몇몇 판례에서는 ‘사기 또는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가 있었을 경우 해고로 본 경우도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강박은 ‘목에 칼 들어오는 정도’로 그 기준이 매우 까다롭다”면서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사측의 압박으로 사직서를 냈다고 해더라도 본인의 의사 표시로 보는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박은정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사측이 일방적인 계약 해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사직을 강요한 사례는 아주 많다”면서 “다만 사직서를 제출했더라도 당시의 불이익 조치 속에서 본인이 어떤 환경에 놓였는지 전후 과정에 대해 노동자가 구체적인 주장을 할 경우, 유리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회사의 지속적인 퇴직 압박 속에서 끝까지 버틸 수 있는 노동자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이들이 회사에 낸 사표는 자기 손으로 쓴 것이 아닙니다. ‘해고 아닌 해고’를 당한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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