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포스트=송협 편집국장] 지난 12일 정부가 국정화 교과서 채택을 발표했습니다. 대다수 국민과 역사학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념이 편향되지 않는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명분을 앞세워 채택한 것입니다.

불통의 전형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정부의 결단에 국민들은 탄식과 함께 과거 그렇게 반대하고 비난했던 일본의 역사 왜곡 교과서를 새롭게 떠올리고 있습니다.

이번 정부 주도의 국정화 교과서 편찬을 놓고 학계는 물론 정치권이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먼저 국정화 교과서를 찬성하는 새누리당은 현존하는 역사 교과서가 극히 좌편향되고 왜곡 서술된 만큼 국정화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국정화 교과서 편찬을 반대하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번 국정 교과서는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려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국정 교과서의 새로운 변신인데 주목해야 합니다. 과거 역사 교과서는 박정희 주도한 5.16을 군사 쿠데타로 정의했다면 새로 편찬될 교과서는 ‘혁명’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4.19 혁명으로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 먼 이국땅으로 망명한 이승만 정권의 ‘독재’를 ‘건국의 아버지’로 재편집 될 수 있는 것 역시 명백한 역사적 왜곡임에 분명합니다.

자신들의 조부 또는 선친들이 자행한 친일의 역사와 군홧발로 민주화를 짓밟은 쿠데타의 오점을 그저 ‘역사’로 덮어버리고 새로운 역사인식을 제고하려고 애쓰는 세력들의 이 허무맹랑한 발상에 그저 땅이 꺼져라 한숨이 쏟아져 내립니다.

친일의 역사는 끝내 외면하면서도 국정교과서를 찬성하는 세력들의 논리는 하나같이 자학과 부정의 역사관을 심어주며 좌 편향적 의식을 고취시킬 수 없다는 그럴싸한 명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 어째서 일제강점기 시대의 긍정적 모습은 외면하고 비관적인 모습만 일관하냐는 것입니다.

지난 4월 일본 행정부가 무려 18종의 중학교 사회 교과서 중 위안부와 독도, 침략을 통한 일제강점기 내용과 심지어 조선의 국모였던 명성황후를 시해했던 을미사변 내용까지 삭제하며 왜곡된 교과서를 출판 허가했던데 대해 정부는 거침없는 유감을 표명한 바 있습니다.

일본의 왜곡된 교과서 출판에는 날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던 정부가 지금에 와서 일본과 다를 바 없는 행태를 바통을 이어받아 추진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형국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본의 교과서 왜곡에는 눈에 불을 밝히며 비난했던 대한민국 정부가 국민들에게는 참담한 오욕의 과거를 미화로 둔갑시키려 기를 쓰고 있으니 말입니다.

교과서라는 것은 학생들에게 있어 가장 기본적이면서 배움의 기준이 되는 인성의 기초 스승이기도 합니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에 대해서는 부도덕하고 비열하다며 손가락을 펼쳤던 정부가 이제 그 손가락을 자신에게 겨냥하는 꼴을 만들고 있습니다.

명심보감(明心寶鑑) ‘격양시(擊壤時)’에 보면 ‘평생부작추미사, 세상응무절치인(平生不作皺眉事, 世上應無切齒人)’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풀이하면 “한 평생 남의 눈을 찡그리게 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세상 누구도 자신을 향해 원한을 품고 이를 갈지 않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후세에 자신의 이름 석자를 남기고자 합니다. 하지만 빗나간 역사인식과 부끄러운 과거사를 애써 덮기 위해 왜곡된 치적의 결과는 많은 이들에게 원한만 남겨 줄 뿐입니다. 현재를 지배하며 과거까지 지배하려는 인사들이 가슴 깊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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