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포스트=김혜경 기자] 롯데가의 경영권 분쟁이 절정으로 치닫는 가운데 시민단체는 ‘불매운동’으로 정치권은 ‘법 개정 발의’로 각자의 전문분야를 앞세우고 행동에 나서고 있습니다. 오너일가의 집안싸움으로 인해 롯데그룹 전체가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된 셈이죠.


설상가상으로 이 상황을 관전하고 있던 정부가 드디어 칼을 빼들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5일 롯데그룹의 해외계열사 소유 실태에 대한 조사를 하겠다며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불투명한 지배구조에 대한 비판의 수위가 연일 높아지자 정부가 결심을 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사실 그동안 업계에서 롯데그룹의 지배구조에 대한 의문점은 끊임없이 제기돼왔습니다. 400개가 넘는 순환출자고리, 이름도 불분명한 ‘L투자회사’, 그리고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광윤사’의 존재는 공공연히 알고 있던 사실입니다. 최근 롯데의 행보가 전국민적 공분을 사자 뒤늦게 정부가 나섰다는 비판과 함께 이번에는 롯데의 민낯이 공개될지 여부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자산총액이 5조원 이상인 대기업집단은 ‘상호출자규제기업집단’으로 분류돼 일정한 기간마다 지분 및 소유 관계에 대한 정보를 공정위에 보고해야 합니다. 롯데의 경우 국내 계열사 현황은 공시가 됐지만 일본 등 해외 계열사 현황은 제대로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원칙적으로 외국에 있는 계열사는 국내 공정거래법의 규제를 받지 않아 공시 의무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에 한국 롯데그룹에 속하지 않은 광윤사와 L투자회사 등은 자연스럽게 배제됐습니다. 그동안 일각에서 이들의 정체를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음에도 당국은 ‘일본회사들은 상호출자규제기업집단 소속이 아니기 때문에 정보 공개 의무가 없다’며 감독의 어려움을 토로해왔습니다.


그러나 오너일가의 경영권 분쟁으로 한국롯데의 머리 위에는 일본회사가 있다는 것과 일본주주들에 대한 배당급 지급 사실이 세간이 퍼지면서 롯데에 대한 의구심은 날로 커져만 갔습니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4년까지 16개 일본 롯데 계열사들이 한국 내 법인에서 받은 배당금 총액은 1379억8700만원으로 집계됐습니다.


특히 일본 측 지분이 90%가 넘는 지주회사 격 호텔롯데의 경우 일본 주주들에게 3년간 지급한 배당금은 전체의 절반을 웃도는 762억750만원에 달했습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한국 롯데의 한 해 매출은 84조원, 전체 배당액 규모가 3000억원임을 미뤄볼 때 일본 관계사에게 돌아가는 배당금의 규모는 결코 크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번 돈, 일본에 퍼준다’는 인식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공정위는 신격호 총괄회장이 해외계열사를 통해 국내계열사를 지배하는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에 전체적인 소유구조를 파악한다는 입장입니다. 공정위는 롯데가 정당한 이유없이 자료제출을 거부하거나 허위로 제출하면 그룹 총수를 형사 고발하겠다는 강수를 두기도 했습니다.


정치권에서도 ‘롯데 해외법인법’ 발의가 거론되면서 당정은 롯데의 거미줄처럼 얽힌 순환출자구조에 본격적으로 칼을 들이대기 시작했습니다.


총수 일가는 순환 출자 구조를 이용해 적은 자본으로 그룹 전체를 장악할 수 있습니다. 순환출자는 대기업집단 내에서 계열사 A가 B로, B가 C로, 다시 C가 A로 자본금을 출자해 고리를 만드는 방법을 뜻합니다. 정부는 지난해 7월부터 신규 순환 출자를 금지한 바 있습니다.


공정위에 따르면 현재 국내 대기업집단 중 순환출자구조를 가진 곳은 모두 11곳입니다. 그 중 롯데는 416개로 삼성(10개), 영풍(7개), 현대자동차(6개)에 비해 고리의 수가 압도적입니다.


당정의 조사가 어느 정도 이뤄질 경우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전모가 나올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특히 관심이 쏠리는 곳은 ‘일본주식회사 L투자회사’입니다. L자와 함께 1번부터 12번까지 번호가 붙은 이 회사들의 정체는 그동안 광윤사와 함께 철저히 베일에 쌓여져 있습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호텔롯데의 최대주주는 지분 19.07%를 보유한 일본 롯데홀딩스입니다. 그 다음으로 ▲L제4투자회사 15.63% ▲L제9투자회사 10.41% ▲L제7투자회사 9.40% ▲L제1투자회사 8.60% ▲L제8투자회사 5.76% ▲광윤사 5.45% 등 호텔롯데의 주주명단 10위권까지 L투자회사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L투자회사들은 호텔롯데 뿐만이 아니라 한국 롯데 계열사의 주주명단 여기저기서 등장합니다. 이들은 롯데알미늄 지분의 34.92%, 롯데로지스틱스의 45.34% 도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에 일각에서는 정체불명의 L투자회사가 지난 수년간 챙긴 배당금이 막대한 액수에 이르는 만큼 오너일가의 ‘돈통’역할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습니다.


시민단체 경실련은 “롯데그룹은 지난해 공정위 보고에서도 순환출자관련 허위보고를 했으며 호텔롯데 등의 일본계 대주주 또한 정확한 실체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면서 “이는 대기업집단을 관리·감독해야 할 공정위가 제대로 업무에 충실하지 않고 있다는 것으로 그룹 지배구조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통해 투명성을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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