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치금융에 은행이 휘둘리고 있다. 이명박 정권에서는 ‘녹색금융’, 박근혜 정권에서는 ‘기술금융’이란 이름으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금융이란 미명하에 코드 맞추기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권 밖에서조차 관치금융이 도를 넘었다고 지적하고 있지만 권력자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권력에 적극적으로 구애를 하는 풍경도 목격되고 있다. 현장에서는 ‘시늉 실적’으로 버티면서 정권의 ‘바람’만 지나가기를 바라는 게 일상화된 지 오래다. [편집자주]


[데일리포스트=부종일 기자] 관치금융으로 금융가에서는 불만이 터져나오는 가운데 유독 관심을 받는 인사가 있다. 바로 권선주 IBK기업은행장이다.


권 행장은 지난 3월 임종룡 금융위원장으로부터 “기술금융 대모”라는 칭찬을 받았다. 앞서 1월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다른 분(장·차관)들도 이 여성 은행장을 좀 본받으시라”고 극찬을 했다.


박 대통령이 이같은 칭찬을 한 이유는 박근혜 정권이 추진 중인 ‘기술금융’에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실제 기업은행은 올해 1월부터 지난달까지 기술금융 실적 1위 자리를 이어나가고 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이 같은 권 행장의 행보에 걱정을 하기도 한다. 과거 이명박 정권 시절 추진했던 녹색금융이 반짝하다가 자취를 감췄는데, 이에 너무 매달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체력이 안 되는데 용을 쓰고 덤빈다는 시각이다.


얼마 전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밀었던 안심전환대출의 경우에서 기업은행은 첫날인 24일 신한은행, KB국민은행, NH농협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등을 제치고 ‘1등’ 실적을 달성했다.


하지만 그 때뿐이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안심대출 첫날 가장 많았다”면서도 “이후 (기업은행의) 마켓쉐어가 5~6% 밖에 되지 않아 KB국민은행에 1위 자리 내어주고 평범한 수준을 유지했다”고 털어놨다.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 건도 비슷하다. 권선주 기업은행장은 지난 24일 비금융 기업과 합작 형태로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을 검토 중인 사실을 한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공개했다.


그녀는 “최종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어떤 파트너와 어떤 식으로 협업해야 할 지에 대해 큰 그림은 나와 있다”며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 작업이 세부 조율 단계에 임박했음을 밝혔다.


이 같은 발언은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앞서 16일 “지금이야말로 인터넷 전문은행 출범의 적기”라고 강조한지 일주일 만에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이 같은 리액션이 사실상 금융권에서 기업은행이 ‘1등’이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이 이전부터 3개월여 동안 정부와 관련업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태크스포스를 구성해 관련 논의를 진행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기업은행의 이 같은 전향적인 태도는 금융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인터넷 전문은행에 대한 정부의 최종안이 6월중 나온다는 점 때문에서다.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은 많은 은행과 전문가들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는 상태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사례를 봐도 인터넷 전문은행이 경쟁력을 갖고 오프라인은행의 대안채널로 각광 받고 있지는 않다.


김동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의 전문은행은 수익성이나 비용 등에서 기존 은행에 비해 경쟁력이 크지 않다”며 “인터넷 전문은행에서 인건비는 절약할 수 있지만 시스템 투자 등으로 비용으로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기존 은행보다 수익이 높지 않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권 행장이 중소기업청장이나 금융위원장 자리를 염두에 두고 유독 정책금융에 적극 나서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관치금융에 눈칫밥만?먹을 게 아니라 차라리 홍위병이 돼 ‘뒷 배’를 보자는 계산이라는 말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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