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도 핑계도 없이 오롯이 자신의 탓 강조한 참 정치인

[데일리포스트=송협 기자] 폭염의 열기가 더욱 기승을 부리는 7월 23일 평생을 노동자를 위한 정치를 펼쳤던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모친과 함께 거주했던 서울 중구의 한 아파트에서 투신해 생을 마감했다.

그의 나이 올해 63세, 굴곡 깊은 정치의 삶을 살면서 노동자의 현실에 가슴 아파했으며 독점 자본의 탐욕에 서슬 퍼런 목소리를 높였던 노 의원, 그는 정·관계를 흔들고 나선 댓글 조작 중심에 선 드루킹(구속 수감)으로부터 대가성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에 시달려왔다.

정치일선에 나서기 전부터 노동현장에서 노동자들의 인권과 생존권을 위해 신념과 소신있는 삶을 살아왔던 그였던 만큼 청탁을 조건으로 금품을 받았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견딜 수 없는 수치심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의 삶과 비교해 볼 때 말도 되지 않는 치욕을 온몸으로 뒤집어 쓴 채 아파트 난간에 올라섰을 그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다.

각종 정치 시사 프로그램에 패널로 참여해 구수한 입담과 함께 논쟁을 주고받았던 그를 기억하는 국민들은 그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 충격적인 사건에 할말을 잃고 망연자실 떨리는 가슴을 추스르는 이들도 적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의 죽음을 접한 한 네티즌은 비통한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마치 독립군이 친일파에게 적격 당했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다. 설령 그 돈을 받았다 하더라도 이미 대한민국 국회 곳곳은 더 많은 부패로 썩어 냄새가 진동하는데 왜 당신이 죽어야 합니까?”라고 말이다.

평소 함박웃음 가득한 모습으로 자신을 찾는 사람들을 반겨줬던 노회찬 의원, 그는 세상을 등진 23일 오전 9시 30분 “드루킹과 관련 금전을 받은 사실은 있지만 청탄과는 무관하며 정상적인 후원 절차를 밟지 않고 어리석은 선택을 한 나의 잘못이 크고 그 책임 역시 무겁다.”는 통한의 유서를 남기고 떠났다.

그는 죽을 때까지 노동자의 삶이 녹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모든 허물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면서도 자신과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삶의 분신인 정의당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모든 허물은 제 탓이니 저를 벌하여 주시고 정의당은 계속 아껴주시길 당부드린다.”

◆ 노동자의 삶 속에 녹아 있는 故 노회찬 의원은 누구인가?

담백한 입담과 유머러스한 표정의 패널, 하지만 부정과 부패가 만연한 정치와 재계를 주제로 한 토론에서는 설득력 높은 논리를 펼치며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대쪽 같은 정치인 노회찬 의원, 그는 명실공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진보 정치인이며 노동자의 대변인이다.

한국전쟁 막바지인 지난 1953년 부산에서 태어난 노 의원은 부산중학교와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70년대 중반 박정희 유신정권의 광기가 시퍼렇던 그 당시 열악한 노동환경과 인권을 위해 노동운동에 뛰어 들었던 노 의원은 1982년 체계적인 노동운동을 위해 전기용접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곧바로 용접공으로 위장취업을 통해 노동자들 속에서 기름밥을 함께 먹으며 노동의 현실을 체감했다.

노 의원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이어 이한열 최루탄 피격 사건이 도화선이 된 1987년 6월 항쟁 직후 인천지역민주노동자동맹(이하 인민노련)에서 중앙위원으로 활동했다. 당시 인민노련은 노동자 계층이 독자적인 정치세력을 구축하기 위해 백기완 현 통일문제연구소장을 대선후보로 추대하기도 했다.

노 의원은 1989년 인민노련 활동 과정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긴급체포 돼 징역 2년6개월 형을 받고 1992년 만기 출소를 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중앙에서 정치활동에 나선 것은 1997년 진보정당 ‘국민승리21’의 정책기획위원장으로 선출되면서다. 노 의원은 3년 후인 2000년 새롭게 창당한 민주노동당에서 초대 부대표를 거쳐 사무총장까지 역임하고 2004년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하게 된다.

17대 국회의원으로 의정활동을 펼치고 있던 2005녀 7월 노 의원은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을 폭로하게 된다. 삼성그룹으로부터 이른바 ‘떡값’을 챙겨 온 검사 7명을 공개한 ‘삼성 X파일’이 노 의원을 통해 세상에 폭로된 것이다.



삼성 X파일 사건은 이상호 전 MBC 기자가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의 도청 내용을 담은 테이프를 입수해 삼성그룹과 정치권, 검찰의 유착 관계를 폭로한데서 비롯됐다.

이 사건은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이 삼성그룹 이학수 부회장에게 신라호텔에서 1997년 대선 당시 특정 대통령 후보에 대한 자금 제공을 공모하고 문제의 검사 7명에게 뇌물을 제공한 것을 보고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당시 정치권과 삼성그룹은 도청 테이프를 입수해 공개한 이상호 기자와 삼성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검사 7명의 실명을 공개한 노회찬 의원을 고소하면서 노 의원은 징역 4개월 집행유예 1년 등을 선고 받고 의원직을 상실한 바 있다.

삼성 X파일 사건 폭로 이후 의원직을 상실했던 노 의원은 2016년 총선에서 경남 창원 성산에 지역구에서 출마, 당선되면서 20대 국회에 입성하게 됐다.

한편 정의당과 유가족은 故 노회찬 의원의 장례를 ‘정의당장’으로 치르며 오는 25일 오전 10시 입관하고 발인은 27일 오전 9시, 장지는 마석모란공원이다. 정의당은 각 시도당 사무실에도 분향소를 설치하고 시민들의 조문을 받고 있다. 또 26일 장례식장에서 추모제를 열고 27일 오전 10시 국회에서 영결식을 거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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