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병의 진짜 주범은 인간벼룩 가능성 제기

[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 1348년 중세시대.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스페인 그리고 독일 등 유럽 전역에서 최악의 재앙이 창궐했다.

흑사병은 창궐 3년 만에 중세 유럽 인구의 절반 수준인 4000만명을 쓸어냈으며 생존자들의 삶을 두고두고 괴롭혔다. 문제는 이 무시무시한 병이 어디서 시작됐고 번지는지 그 원인조차 알 수 없었다.

이 이상하고 무서운 재앙은 도대체 어디서 시작됐을까? 흑사병이 창궐하던 그 시대, 문명도 무엇도 맥없이 무너졌던 그 세계. ‘BLACK DEATH’ 이른바 흑사병은 중세 시대 모든 것을 앗아갔다.



당시 최고의 의술을 자랑하고 있던 의사들조차 흑사병을 다룰 방도를 알아내지 못하고 속수무책 무너졌다. 이 무시무시한 병은 빠르게 번져나가고 있었지만 공기 전염 때문인지 음식물 때문인지 아니면 접촉을 통한 것인지 그 감염경로 조차 알아내지 못했다.

그들이 아는 것은 오직 하나 흑사병에 걸리면 그 증상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끔찍하다는 것 외에는 도무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 흑사병은 쥐로부터 시작됐다? 오랜 정설을 깬 최근 논문 발표 역사학계 ‘발칵’

유럽 인구 절반을 죽음으로 몰고 온 최악의 대재앙 ‘흑사병(黑死病)’의 원인에 대해 그동안 페스트균, 즉 쥐에 의한 감염이라는 것은 오랜 정설로 알려졌다. 하지만 흑사병은 쥐가 아닌 진범이 따로 있었다는 최신 연구 논문이 발표되면서 역사학계와 의학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이 논문은 최근 미국의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내셔널 지오그래픽’뉴스와 영국 BBC 등을 통해 소개됐으며 해당 논문은 세계적인 과학 전문지 ‘미국국립과학원저널(PNAS)’ 1월 15일자에 게재됐다.

논문에 따르면 유럽 인구 3분의1을 죽음으로 이르게 한 흑사병을 비롯해 14세기부터 19세기 초까지 이어진 페스트 유행은 인간에 기생하는 ‘벼룩’과 ‘이’가 세균 매개체였음을 시사하고 있다.

논문 대표저자인 캐서린 딘은 “전염병은 인류의 역사를 크게 바꿔왔다. 때문에 어떻게 확대 됐는지 왜 그렇게 빠르게 퍼졌는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페스트균, 현대 전염병 보다 훨씬 빠르게 확대

페스트는 페스트균(Yersinia pestis)에 의한 급성 발열성 질환으로 매개체는 주로 벼룩이며 감염된 벼룩이 인간을 찌르는 순간 균이 혈관에 침입한다.

19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페스트 유행은 쥐 등 설치류의 벼룩을 숙주로 해 균이 옮겨져 확산되는 전염병으로 알려져 있다. 쥐가 페스트균에 감염되면 그 쥐에 기생하는 벼룩으로 세균이 옮겨지며 감염된 쥐가 죽으면 숙주를 잃은 벼룩이 인간을 습격하는 것이다.

현대 전염병이 쥐벼룩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과 중세 흑사병 희생자 유전자를 조사한 연구 결과를 통해 중세시대의 흑사병도 쥐에 의한 것으로 믿어왔다.



그러나 흑사병 전염 경로는 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역사학자도 있다. 흑사병이 현대의 어떤 전염병보다 훨씬 빨리 유럽에 퍼졌고 중세에 쥐가 떼죽음을 당했다는 어떤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운다.

영국 글래스고우 대학의 중세 연구가인 사무엘 콘 씨는 "유전학자와 현대사 연구가들은 쥐를 (전염병)대유행의 범인으로 몰아 증거의 조각을 왜곡하고 있다"고 말한다.

◆ 쥐벼룩인가? 사람벼룩?이(sucking lice)인가?

그렇다면 흑사병은 어떻게 퍼진 것일까? 이전부터 쥐가 아니라 인간에 기생하는 벼룩이 원인이었다고 생각한 학자도 있었다. 감염된 인간의 피를 빤 벼룩이나 이가 페스트균까지 함께 다른 사람에게 옮겨 감염시킨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 논문에서는 수학적으로 쥐=벼룩과 인간=벼룩?이가 질병 확산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연구팀은 각각의 확산 모델을 실험했다.



논문 공동저자이자 오슬로대학(University of Oslo) 전산 생물학자인 보리스 슈미트는 "기본적으로 시뮬레이션을 통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중세 흑사병 유행 시기 유럽에서 발생한 9회의 발병 사망자 패턴과 일치하는 모델이 어느 것인지 통계적으로 평가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조사 대상이 된 9개 도시 가운데 7곳에서 쥐벼룩이 아닌 인간벼룩?이 모델이 일치했다.

연구팀은 보다 많은 실험 데이터를 수집해 모델을 개선할 여지가 있으며 이 연구가 전염병 연구자들 사이에 논란을 부를 수 있다고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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