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포스트=황선영 기자] 4차 산업혁명을 앞두고 폭발적인 변화가 감지되는 곳은 글로벌 자동차 업계다. 과거 마차에서 증기기관과 석탄의 조합으로 대변혁이 일어난 것처럼 다가올 시대도 마찬가지다. ‘탈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 자동차는 한 국가의 경제수준, 에너지 플랫폼 등을 엿볼 수 있는 지표다.

하드웨어 부문에서 디젤·가솔린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수소 등 신 에너지차로 이행한다면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커넥티드카, 자율주행이 핵심이다. 전자가 자동차의 심장에 해당된다면 후자는 머리인 셈이다.

업종 간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미래차 시장을 지배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는 곳은 비단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업체뿐만 아니다. 글로벌 정보기술(IT) 공룡 구글과 애플도 몇 년 전부터 미래차 프로젝트를 준비해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업계는 술렁이고 있다.

인공지능(AI)이 운전대를 잡는 꿈의 시대를 앞두고 구글과 애플은 자동차의 ‘브레인’이 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완성차 제조업체가 이들에 비해 혁신에 뒤쳐질 경우 향후 부품업체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자동차 관련 이슈에 IT업체의 이름이 심심찮게 오르내리는 가운데 ‘누가’ 미래 자동차 주도권을 선점할 것인가?

◆ 구글의 ‘웨이모’와 애플의 ‘프로젝트 타이탄’

구글은 지난 2009년부터 AI 분야 전문가인 세바스찬 스런 미국 스탠포드 대학 교수의 도움을 받아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 집중해왔다. 앞서 스런 교수는 2005년 미국 국방부에서 후원하는 자율주행 대회에서 스탠포드 대학 팀으로 참가해 약 7시간이 주행 시간을 기록하며 우승한 바 있다.

▲ 과거 '첫 주행' 영상에 등장하는 구글의 자율주행차. 사진=유튜브화면 캡쳐

 

2014년 구글이 만든 ‘첫 주행’이라는 동영상에 등장하는 자동차에는 운전대가 없다. 자동차의 상징 ‘운전석’을 없애버림으로써 인간은 더 이상 자동차에 명령을 내리는 존재가 아니다. 몸만 싣고 있는 탑승객에 불과한 것이다. 구글의 2인용 자율주행 테스트 차량은 2016년 중반까지 약 260만km를 자율주행으로 달리며 방대한 자료를 축적해오고 있다.

지난해에는 지주회사 ‘알파벳’ 아래 자율주행기술 전문기업인 ‘웨이모(Waymo)’를 설립하고, 자동차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존 크라프칙을 전문경영인(CEO)으로 임명했다. 크라프칙은 과거 현대자동차 미국법인장으로 일하며 미국 내 현대차 점유율을 끌어올렸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실제 상품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는 전망과 함께 구글이 자동차 자체보다는 하드웨어에 탑재할 프로그램 판매를 위해 자율주행 이슈를 만든다는 인식이 그동안 이어져왔다.

최근 구글이 운전대 없는 완전 주행 차량을 포기하고 자율주행 소프트웨어에만 집중한다는 계획을 내놓음으로써 이는 더 확실해졌다. 이달 초 웨이모는 미국 애리조나 주 피닉스시 공공도로에서 운전석을 비운 채 일반도로를 주행하는 영상을 공개한 바 있다.

▲ 이달 초 구글 '웨이모'에서 공개한 자율주행차가 일반도로를 달리는 모습. 사진=유튜브화면 캡쳐

구글이 소프트웨어 판매에만 관심이 있다는 사실은 지난해 피아트 크라이슬러와 맺은 협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구글의 자율주행 기술을 크라이슬러 ‘퍼시피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미니 밴’ 모델 100대에 탑재한다는 것이 골자다. 당시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사와 IT업체와의 대등한 파트너쉽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지만 이는 곧 구글의 새로운 발표를 통해 무산됐다. 구글은 샘플 100대를 제외한 후속 생산은 계획에 없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소프트웨어 테스트 결과를 구글만 보유함으로써 크라이슬러를 단순 하드웨어 공급업체로 전락시킨 것이 아닌가하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독일의 자동차 전문가 페르디난트 두덴회퍼 뒤스부르크-에센대학 차 연구소 소장은 저서에서 “소프트웨어 사업을 자율주행 부문으로 확대해 자동차 소비자들의 데이터를 이용함으로써 미래의 수십억 시장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굳히려는 전략”이라면서 “구글이 시장 접근을 통제하고 제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동차 제조사들을 불안정한 부품 공급 업체로 강등시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애플은 구글에 비해 한 발 늦게 자율주행 개발에 뛰어들었다. ‘프로젝트 타이탄(Titan)’이라 불리는 애플의 자율주행 기술 개발은 최근까지 비밀리에 진행해오다 지난 4월 애플의 자율주행 차량이 실제 도로를 달리는 모습이 미국 현지 언론에 포착됐다. 이어 6월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자율주행 시스템 개발 사실을 처음으로 시인했다.

애플은 구글보다 하드웨어적인 방법에 접근이 가능하다는 분석이 잇따랐다. 맥킨토시 컴퓨터에서부터 아이폰까지 미래지향적인 디자인과 감성을 자극하는 애플은 전 세계적으로 열렬한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다.

애플 이름을 가진 제품이라면 일단 사고 보는 매니아층은 애플이 지닌 가장 강력한 자산이다. ‘아이카’로 불리는 애플식 미래차가 출시된다면 이들의 눈길을 끌 것은 명백하다.

컴퓨터 제조사였던 애플이 스마트폰 시장을 주름잡고, 미래에는 자율주행차 제조업체로 변모할 수 있을지는 테슬라에 빗대 보면 쉽게 상상이 가능하다.

테슬라는 생산에서부터 판매까지 일관된 시스템은 물론,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애플처럼 추종자들을 늘려가고 있다. 자율주행 시스템 또한 타사와 협력하는 것이 아닌 ‘오토 파일럿’이라는 이름으로 자사가 직접 개발하고 있다.

애플이 현재 테슬라의 발목을 잡고 있는 대량 생산 문제만 해결한다면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CEO는 그동안 언론 인터뷰에서 구글보다는 애플을 경계하는 듯한 발언을 해온 바 있다.

▲ 현재까지 밝혀진 애플의 자율주행 프로젝트의 내용. 사진=블룸버그뉴스 화면 캡쳐

애플 기술담당 수석부사장을 지낸 밥 맨스필드가 타이탄 프로젝트를 지휘하고 있는 가운데 2020년께 애플의 자율주행 시스템이 공개될 것으로 업계는 예측하고 있다.

다만 애플도 최근 구글처럼 소프트웨어에만 집중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팀 쿡 CEO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애플이 자율주행 시스템 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자율주행차를 만들 계획이 없다”고 강조했다.

◆ 소비자는 구글 혹은 애플 자동차를 선택할 것인가?

“애플에서 자동차가 나온다구요? 가격이 적절하다면 궁금해서라도 구매해볼 의향이 있죠. 애플 이름값 정도는 하지 않겠어요?”

아이폰만 쓴다는 국내 한 소비자의 이같은 반응은 미래차 시장의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015년 미국 컨설팅업체인 ‘캡제미니’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흥미로운 결과가 도출된 바 있다.

향후 1년 안에 자동차 구매나 임대를 계획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 등 7개국의 자동차 소비자 7553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자동차 제조업체가 아닌 구글, 애플 등에서 자동차가 생산된다면 구매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서 전체 49%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긍정적 응답의 비율은 지역적으로는 ▲인도(87%) ▲중국(74%) ▲브라질(63%) 순으로, 연령대별로는 18~24세 사이의 젊은 층(65%)에서 더 높았다. 이 업체는 “소비자들이 신형 자동차에서는 소프트웨어가 핵심임을 알고 있고 기술기업들이 좀 더 소비자 중심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미래차 산업을 두고 자동차 제조의 중심지 미국 디트로이트와 IT기업들의 고향 실리콘벨리 사이 묘한 신경전이 형성되는 모양새다. 기업 간 합종연횡이 심화되면서 자동차 제조사들은 구글과 애플에 대한 경계심을 높이는 가운데 이같은 분위기는 비단 미국 내에서 국한되지 않는다.

상하이자동차그룹의 구펑(谷峰) 최고재무관리자(CFO)는 지난해 블룸버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구글이나 애플 대신 알리바바와 함께하고 있다”면서 “구글이나 애플은 그들의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기 위한 하드웨어의 일부로서 자동차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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