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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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의 재해석]②손권의 등극…‘헬 게이트’ 남조(南朝)의 씨앗 되다

[역사의 재해석]②손권의 등극…‘헬 게이트’ 남조(南朝)의 씨앗 되다

[데일리포스트=이상훈 자유기고가] 이전 편에서 썼던 역성혁명을 한 번 더 짚어보자.

역성혁명…천심(天心)을 얻은 자가 천자(天子)가 된다. 이 논리는 전편에 서술했으니 생략한다. 궁금하면 읽어보시라–; (참고: 7월17일자 =[역사의 재해석]①西歐의 대륙교(大陸敎)가 된 가톨릭…원인은 역성혁명) 

솔까말. 역성혁명의 근거는 실력자가, 그것도 백성들의 지지까지 받으면 현 왕을 죽이고 새 왕이 될 수 있다는 논거의 핵심이다. 역성혁명의 정당성을 최초로 부르짖은 자는 맹자(孟子)다.

왜 맹자는 역성혁명을 부르짖었을까? 그는 전국시대 제(齊)나라 사람이다. 제나라가 어떤 나라냐면 중국 역사상 최초의 역성혁명을 일으켰던 주무왕(周武王) 가신으로 책사이자 전술가인 강태공(姜太公)이 주무왕의 왕위 등극 후 제후로 봉분 받아 세운 나라다.

현 산동성에 있는 제나라는 바닷가 근처로 물산이 풍부하고 주왕실의 도읍 호경(鎬京:현 산시성 시안 서남쪽)과 거리가 뚝 떨어져있었다.

<설명=맹자는 군주가 군주답지 못하면 군주도 바꿀 수 있다는 역성혁명 이론을 주장>

따라서 춘추시대 내내 매우 강성한 나라였다. 그토록 강성했던 제나라는 춘추시대 말엽 망했다. 제가 왜 망했을까? 바로 역성혁명때문이다. 강제(姜齊)시절 최전성기였던 제환공(齊桓公)때 중원의 소국 진(陳)나라의 공자 진완(陳完)이 공실(公室)의 변란을 피해 도망왔다.

그 진완의 후손이 300년 후 결국 강제의 군위를 뺏는다. 이 전제(田齊:진완의 후손들은 전(田)땅을 분봉 받은 후 씨를 전씨로 바꿨다)가 왕(당시 중국에서는 王이 천자의 호칭이었다.

황제는 진시황 이후)을 칭한 다음 대인 제선왕(齊宣王)시절 사람이었던 맹자가 감히 역성혁명이 잘못됐다고 말할 순 없었을 것이다. 이를 볼 때 맹자는 어용학자일 가능성이 크다–;

중국에서 왕조교체는 두 가지 방식으로 이뤄진다. 첫째는 전 정권의 군주가 스스로 자기 핏줄이 아닌 신하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선양(禪讓). 요임금과 순임금이 선양을 통해 후계자를 세웠다는 점에서 두 임금은 성군으로 칭송받는다.

다른 하나는 그냥 무력으로 전 정권을 타도하고 뺏는 역성혁명이다. 주(周)나라가 은(殷)나라를 멸망시킨 후 역성혁명이 유학의 중심사상이 됐다. 유학을 만든 사람은 주무왕의 동생 주공(周公) 단이다.

하지만 이 선양도 사실상 무력으로 이뤄지게 된다. 첫 번째가 신(新)나라 왕망이다. 전한(前漢) 마지막 황제 유영(劉嬰)에게 선양을 받았으며 200년 후 후한(後漢) 헌제(獻帝)는 조위(曹魏)의 조비(曹丕)에게 황제자리를 넘겼다.

전 황제에게 칼을 들이대고 자리를 뺏는 이런 식의 선양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 그래도 이건 역성혁명과 달리 명분은 그나마 있다. 실력 뿐 아니라 명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황제가 될 수 있는 방식이 삼국시대에서 바뀐다. 우선 조비가 한헌제로부터 선영을 받고 유비는 조위가 멸망시킨 한실을 계승한다는 차원에서 황제가 됐다.

헌제가 살아 있음에도 유비가 황제가 된 건 어이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말은 된다. 유비는 이때 이미 헌제의 숙부. 즉 황숙(皇叔)으로 알려져 있어서 한나라 멸망 후 제위를 계승하는 건 명분이 서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이 황제가 되자 뜬금없는 일이 발생한다. 황제가 될 명분이 전혀 없고 오로지 실력만 있는 이가 황제를 ‘자칭’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향후 있을 남북조 시대의 남조를 연 오나라의 초대 황제 손권(孫權)이다.

손권의 황제 등극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때부터 중국 황제는 실력만 있으면 누구나 하는 자리가 됐기 때문이다. 물론 삼국지 오빠들은 유비의 등극도 깔 것이다–;

손권은 황제인 조비와 유비의 침공을 막아내 사실상 대등한 군주라는 점만 보면 황제가 돼도 이상할 건 없다. 하지만 그는 황제가 될 만한 아무런 명분이 없다.

조비의 아비 조조는 후한의 난세를 어느 정도 평정했으며 동탁과 삼보의 난 때문에 죽을 위기까지 갔던 한헌제를 다시 세운 사람이다.

유비는 논란의 여지는 많지만 후한 경제의 후손이고 헌제로부터 밀조를 받았다는 명분을 내세워 의형제격인 신하 둘만 데리고 다니던 쥐뿔도 없던 시절부터 조조 타도를 부르짖었던 사람이다. 그가 한헌제의 뒤를 계승하는 것도 논리는 맞다.

그런데 손권은? 아버지 손견은 그냥 전당강 일대의 토호였고 그래서 그런지 손견은 명문집안 출신 아내(오국태)를 겁박해서 얻었다.

형 손책은 용맹무쌍한 장수였지만 오군(吳郡)과 회계일대 토호들의 맹주에 불과했다. 그러다 대촉 동맹을 깨고 북벌에 나선 관우를 뒷 치기해 형주남부지역을 차지한 후 대로한 유비가 쳐들어오자 위왕 조조에게 사실상 칭신을 했고 이에 오왕(吳王)으로 책봉된 것 밖에 없다.

손권의 실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불과 19세에 형 자리를 물려받아 토호세력의 연합체였던 오나라를 나라로 만들었고, 난세의 영웅 조조와 유비를 각각 적벽과 이릉에서 참패시켰다는 점을 보면 그도 두 사람 못지않은 영웅인 건 맞다.

하지만 영웅인 것은 영웅인거고 황제는 다르다. 드넓은 중국에 실력있는 지방 군벌은 쎄고 쎘다. 하지만 아무런 명분을 제시하지 못한 채 황제가 된 자는 손권 밖에 없다. 그때까지는. 바로 이때부터 실력이 있는 자는 황제가 된다…는 중국사에 법칙이 생겨난 것이다.

손권의 황제등극에 대해서는 당시에도 논란이 많았다. 정사 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조위를 정통으로 보고 조조, 조비 등을 각각 무제기, 문제기로 실었다. 촉한 황제 유비와 유선에 대해 각각 선주전, 후주전으로 구분했다.

진수는 유비와 유선을 황제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선주의 성은 유고 휘는 비, 자는 현덕이다”라고 시작해 최소한의 예의는 지켰다.

물론 진수는 촉한 사람으로 촉한 후주시절 벼슬도 했다–; 하지만 손권은 오주전에 다루면서 “손권의 자는 중모다”로 시작한다.

하지만 삼국정립이란 상황인 만큼 손권의 등극은 인정될 수밖에 없었다. 우선 촉한의 제갈량은 신하들의 반발에도 무릅쓰고 사자를 보내 그의 등극을 축하했다.

사실 그동안 촉-오 동맹은 황제와 왕의 동맹이었으니 이것도 어색했다. 조위의 조예는 손권의 칭제를 벌할 수 있었으나 촉-오 동맹이 살아 있는 만큼 이를 문죄(問罪)할 입장이 아니었다. 더구나 조위는 제갈량의 북벌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그렇게 손권은 황제가 됐다. 중국사에 몹쓸 관행을 남기고. 그 여파는 손권 사후 오나라가 사마씨의 서진(西晋)에 멸 당하고 영가의 난으로 서진마저 멸망한 불과 30년 뒤 나온다.

5가지 오랑캐가 장강 이북을 다스린 5호16국시대와 남북조시대가 그것이다. 한(漢)나라의 뒤를 잇는다고 주장한 유연의 동생 유총이 낙양성을 불태우고 서진을 멸당 시켰다.

그 뒤 옛 오나라의 수도 건강(현 남경)으로 도망간 사마씨의 후예는 거기서 동진(東晋)을 세운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송(宋), 제(齊), 양(梁), 진(陳)까지. 수문제(隋文帝)가 다시 중국을 통일할 때까지를 남북조시대라 부른다.(아예 앞에 오나라까지 끼워 남조를 6조로 보는 시각도 많다)

이들 남조는 다 비슷한 과정과 결말을 맞는다. 전 정권의 신하된 자가 정권을 잡자 황제를 뒤엎고 황제가 된다. 그리고 전정권 황실 사람은 멸족시킨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남북조시대는 중국사에서 헬게이트로 꼽힌다.

물론 손오(孫吳)는 그런 꼴을 당하지 않았다. 엄연히 다른 나라인 서진에게 멸당했으니깐. 하지만 역성혁명을 이뤄낸 송,제,양,진의 창업주는 누구나 똑같이 그간 모시던 황제에게 강제 선양을 받아 황제가 되고 황제를 암살하고 전황실의 씨를 말리는 정책을 쓴 것도 무서울 만큼 똑같다.

바로 손권이 황제가 된 것을 보고 누구나 실력만 있으면 꿈★은 이루어진다는 상상을 품게 된 것이다.

물론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겠냐는 진승의 말처럼 평민, 노비출신이 황제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하지만 평민 출신인 유방이 황제가 된 것을 욕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명분없이 의제를 죽이고 –황제를 칭하진 않았지만– 패왕이 된 항우는 욕을 먹는다. 내가 한 일을 다른 사람이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실력자는 계속 생겨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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