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내다보는 승부사…교포 3세 손정의 회장의 투자 철학

[데일리포스트=김정은 일본 전문 기자] 일본 기술의 자존심이라 불리던 ‘도시바’가 주력산업에서 경쟁력을 잃고 무리한 다각화로 무너졌다.

일본 언론들은 돈 되는 사업에 집중하지 않고 미래를 통찰하지 못한 채 원전사업을 키운 것이 142년 역사를 가진 명문기업 도시바 몰락의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도시바와 일본 제조업은 천문학적인 손실은 물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반면 몰락한 명문기업 도시바와 대비되는 행보를 보이며 일본 IT 업계를 선도하고 있는 기업이 있다. 바로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소프트뱅크(SoftBank)다.

소프트뱅크는 지난 1980년대 소프트웨어 유통을 시작으로 1990년대 PC/인터넷, 2000년대 브로드밴드, 2010년에는 무선인터넷에 승부수를 걸었다. 그리고 적중했다. 소프트뱅크는 현재 직원 6300여명, 시가총액 900억 달러(한화 100조 5000억원)에 달하는 거대 기업으로 몸집을 키워냈다.

교포3세 손정의 투자 철학의 핵심 “30년 뒤 미래에 배팅하라

소프트뱅크의 이런 괄목할만한 성장의 중심에는 미래를 내다보고 소위 ‘돈 되는’ 사업에 크게 베팅하는 배짱을 갖춘 인물, 손정의(孫正義·일본이름 손마사요시) 회장이 있다.

손정의 회장은 의사 결정을 할 때 30년 뒤의 관점에서 판단한다. 즉 30년 뒤 회사가 가야할 방향을 세워놓고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사업인지 역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그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기업가 정신이 투철한 경영 리더로 인정받고 있다. 사업 안정기에 위기를 느끼고, 그 위기에서 기회를 모색하며,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위험 속을 걷는 인물이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7년 일본에서 태어난 손 회장은 한국인 부모 밑에서 성장한 재일교포 3세다. 그는 학부를 졸업 이후 1981년 PC 소프트회사를 설립한 뒤 과감한 인수합병과 지분투자로 회사를 성장시켰다.



1996년 설립 1년 미만 기업인 야후(Yahoo)의 가치를 확신한 손 회장은 35% 지분을 불과 100억엔에 인수해 일본 최고 포털 ‘야후재팬(Yahoo Japan)’으로 키워냈으며 2001년 통신사업에 진출 ‘보다폰’ 일본 법인을 매입한 결과 소프트뱅크를 일본 3위 통신 기업으로 발돋움시켰다.

이를 바탕으로 소프트뱅크는 각종 합병을 통해 끊임없이 사업을 확장하며 몸집을 불리는 방식을 선호했고 2013년 미국의 통신회사 스프린트를 인수했고 이어 지난해 320억 달러(한화 36조 2800억원)라는 거액을 들여 영국 반도체 기업인 ARM홀딩스를 인수했다.

 

 

 

참고로 지난해 12월 기준 손정의 회장의 총자산은 197억 달러(23조 1455억원)로 일본 최고 갑부로 손꼽힌다. 그는 혼자 힘으로 사업을 시작해 유수의 기업으로 성장시켰고, 결국 일본 최고의 부자가 됐다.

일본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사람도 소프트뱅크의 임원이다. 2016년 기준 연봉 1위는 니케시 아로라 소프트뱅크 전 부사장의 경우 103억4600만엔(한화 1037억 8900만원)이고, 2위 역시 로널드 피셔 해외투자담당 이사(24억2700만엔)다.

싱귤래리티(singularity) 시대의 도래, 키워드는 인공지능, 스마트로봇, 사물인터넷

이쯤해서 미래 예측에서 높은 적중률을 보였던 소프트뱅크가 4차 산업 시대를 맞아 주목하고 있는 키워드가 궁금해진다.

소프트뱅크는 30년 후 패러다임과 관련해 전직원과 치열한 논의 끝에 ‘싱귤래리티(singularity)’를 화두로 잡았다고 밝혔다. 또한 이 싱귤래리티 시대에는 컴퓨터가 스스로 생각하는 인공지능(AI)과 스마트로봇, 그리고 사물인터넷(IoT)이 핵심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싱귤래리티란 다소 생소하게 들릴 수 있는데 과학기술(인공지능)이 폭발적으로 성장해 인간의 두뇌를 뛰어넘어 새로운 문명을 낳는 시점을 의미한다. 원래는 일반적 이론이 통하지 않는 지점을 의미하는 수학 용어다.

로봇기술: 감성로봇 페퍼의 성공을 발판으로 스마트 로봇시대를 대비

소프트뱅크는 2012년 프랑스 로봇 기업 알데바란 로보틱스 인수후 소프트뱅크로봇홀딩스(SBRH)를 설립했다. 2015년 중국 알리바바와 대만 팍스콘이 SBRH에 각각 145억엔을 투자하기로 하면서 3사는 세계적인 수준의 로봇 개발 분야에 협력하고 있다.

이를 발판으로 2014년 인간형 감성 인식 로봇 ‘페퍼’를 출시했다. 인공지능 기반으로 대화도 가능한 페퍼는 사람의 감정을 인식 할 수 있는 ‘감정 엔진’을 갖춘 세계 최초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상대의 심리를 파악하고 어휘, 머리 각도 및 눈살을 찌푸리는 등의 행동, 웃음, 목소리의 톤까지 해석한다.



올해 6월에는 구글 지주회사 알파벳의 로봇 개발 부문인 보스톤 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와 일본 도쿄대 로봇벤처 샤프트(SCHAFT)를 인수했다. 양사 모두 두발로 걷는 로봇 기술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는데 걸을 수 없는 페퍼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바로 상용화가 가능하지 않더라도 미래를 위한 투자로서 충분히 가치가 있다”며 “연이은 로봇회사 인수가 커뮤니케이션 로봇, 그 플랫폼으로서 페퍼의 개발을 뒷받침하겠다는 의도만 있는 것은 아니다. 향후 무엇을 해낼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사물인터넷(IoT): 인간 역사상 가장 큰 패러다임의 변화

사물인터넷과 관련한 가장 의미있는 행보는 ARM 인수였다. 소프트뱅크는 작년 7월 영국 반도체칩 설계회사 ARM홀딩스를 320억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반도체를 이용해 모든 사물을 인터넷과 연계시켜 어디서든지 연결하는 IoT 시대에 대비한 것이다.



ARM홀딩스는 매년 150억개 이상의 반도체에 들어가는 반도체용 표준설계 자산을 공급하고 있다. 전력소비 효율성과 보안상의 강점으로 모바일 디바이스와 IoT분야에서 ARM 지배력은 거의 절대적이라는 평가다.

 

 

 

손정의 회장은 “ARM은 모든 것을 연결하는 사물인터넷의 중심이 될 것이며, 사물인터넷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패러다임 전환이 될 것이다”라고 공언한 바 있다.

뿐만 아니다. 지난 19일 일본 언론은 소프트뱅크가 한국 사물인터넷(IoT) 기업과도 손을 잡았다고 전했다.

IoT 기반 에너지 빅테이터 서비스기업 인코어드와 함께 8월 1일부로 합작회사 '인코어드 재팬'을 설립하기로 했다. 인코어드는 한국 벤처기업으로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서 약 10만 가구에 IoT 단말을 설치, 에너지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에너톡’이라는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인공지능(AI): AI가 인류의 지능을 초월할 것

소프트뱅크는 앞서 소개한 인공지능 감성로봇 페퍼뿐 아니라 회사 업무에서도 AI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고객과 회사에 대한 데이터베이스인 ‘소프트뱅크 브레인(SoftBank Brain)’이 대표적이다. 콜센터, 매장, 기업고객 응대 등에 활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콜센터에 고객 문의가 오면 소프트뱅크 브레인에 축적된 데이터를 분석해 운영자에게 답변 가능한 지원자를 알려준다.



아울러 소프트뱅크는 올해부터 1차 서류전형도 AI에게 맡겨 국내외의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입사지원자가 인터넷상에서 회사의 질문에 답을 입력하면 이를 평가해 합격 여부를 결정한다.

일본 언론들은 소프트뱅크의 시도를 기점으로 인공지능을 통한 지원자 평가 방식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이며 향후 모든 과정을 AI에 맡기는 기업이 나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소프트뱅크는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인공지능 스피커 시장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연내 출시를 앞두고 있는 손바닥 사이즈의 초소형 AI 스피커 ‘플렌 큐브(Plen Cube)’는 일본 로봇 스타트업 플렌고어 로보틱스(Plengoer Robotics)가 개발했다.

자연어처리 기술과 음성 융합 기술이 적용됐으며 IoT 제품의 리모컨 대용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주사위 형태지만 위의 절반이 360도 회전한다.



소프트뱅크는 향후 AI가 인간의 두뇌를 뛰어넘는 슈퍼 인텔리전스로 진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손정의 회장은 지난 6월 인공지능 사업에 대한 의욕 때문에 은퇴를 미루겠다며 “앞으로 10년은 더 일하고 싶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IT 기술에 투자하는 대규모 펀드 조성 “4차 산업을 위한 기업 생태계 조성

소프트뱅크는 4차 산업의 주도권을 갖기 위해 유례없는 대규모 펀드 조성에도 나서고 있다. 작년 10월 최첨단 IT기술 및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10조엔 규모의 일명 ‘비전 펀드’ 설립 계획을 밝힌 것이다.

이 펀드에는 소프트뱅크의 2조 7천억엔 출자 외에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계 펀드 ▲UAE 정부계 펀드 ▲애플 ▲퀄컴 등을 비롯한 많은 업체와 거물급 인사들이 대거 참여했다.

비전 펀드는 향후 10년간 기술 분야에 투자하기 위해 만들어진 펀드다. 손정의 회장은 펀드 조성 당시 “기술 산업의 워런 버핏이 목표”라며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로봇 공학 등 신기술 분야에 투자할 것을 시사했다.

최대 규모의 기술 펀드 출현에 업계는 기대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올해 5월에 열린 연례 주주총회에서 그는 “출자 기업을 5000개 규모로 확대할 계획이다. 단순히 수익을 얻기 보다는 동지애를 느낄 수 있는 결속력 있는 기업 집단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손정의 회장은 천재적 투자자이자 명승부사다. 그리고 지금 4차산업 시대에 대한 철저한 대비에 나섰다. 당장의 이익과 경쟁사 제치기가 아닌 장기적 안목으로 종합 인터넷 기업으로 변신하겠다는 야망, 그의 배팅은 이번에도 통할 수 있을까?

소프트뱅크의 투자 뉴스는 오늘도 쉴 새 없이 쏟아지고 있다. 혀를 내두를 정도로 끊임없는 M&A와 지분투자, 나아가 대규모 기술 펀드까지 두려울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시도한다. ‘집념의 사나이’ 손정의가 4차 산업 시대에도 승자로 비상(飛上) 할 수 있을지 소프트뱅크의 미래에 귀추가 주목된다.

 

저작권자 © 데일리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