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과 혼돈의 시대…‘응팔’은 해방구였다

[데일리포스트=송협 기자] “구태정치의 만연된 거짓과 분열...그리고 경제 불황과 실직에 대한 불안감에도 불구하고 2015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드라마(응답하라 1988)가 곁에 있어 웃을 수 있었습니다”(직장인 김보미씨)

박근혜 정부의 출범 3년의 시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혹자는 이 정부의 지난 3년이 마치 어두컴컴하고 기나긴 터널을 지나는 것 마냥 길게만 느껴진다는 말을 내 뱉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통치 3년은 진보하던 역사를 되돌려 구태로의 회귀(回歸)를 꾀한 반국민적 역사의 정점이었고 자신의 빗나간 정치를 비판하는 국민들을 극단적 테러집단인 IS로 지목하며 불통의 전형을 고스란히 보여준 시간이기도 합니다.

추락한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호언하고 나섰던 ‘초이노믹스’ 경제부총리의 통 큰 규제완화책은 가계부채 1200조에 달하는 빚더미를 국민에게 선사하고 책임을 추궁하는 국민들의 목소리에 “나보다 더 훌륭한 경제전문가 많다”면서 다가올 20대 총선을 위해 칼을 갈고 나섰습니다.

해외여행 좋아하는 국가의 통수권자는 일자리 달라는 청년들의 목소리에 아버지와 자식이 일을 나눠가지자는 의미의 ‘임금피크제’라는 쌩뚱 맞은 대안을 제시한 것도 부족해 친일파를 애국자로 둔갑시키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했습니다.

크기변환_구린 정치

친일파 선친에 조금은 얼굴 붉힐 것으로 사료되는 여당의 대표와 그 당은 국민의 거센 반대에도 국정화교과서 채택을 밀어붙이기 급급했고 이를 견제해야 할 야당은 밥그릇 싸움에 진흙탕 물을 뒤집어 쓰면서 추태 부리기에 급급했습니다.

‘희망’과 ‘개혁’을 강조하고 나선 정치경력 3년차 얼치기 정치인은 자신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자 자신이 공동을 만든 당과 대표를 흔들어 놓고 신당을 차려 버젓이 당 대표를 자처하며 자신의 친정 헐뜯기 바빴던 2015년 대한민국이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여러분은 어떻게 버티셨나요?

이 답답하고 한숨만 쏟아지는 시대에 어떤 이는 값 오른 쓰디쓴 소주로 올 한해를 버텨냈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국민건강증진을 위해 인상되면서 잠시 끊었던 담배의 입자들을 허공에 쉴새없이 뿜어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암울하고 탄식만 나오는 올 한해를 잠시나마 잊게 해 준 것은 사람의 냄새, 삶의 끈끈한 정을 느낄 수 있게 했던 한 방송사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꼽을 수 있습니다.

재벌 아들과 가난한 연인의 신데렐라 같은 스토리로 그려가는 막장 드라마와 달리 평범해도 풋풋한 가족애와 우정, 그리고 웃음을 있는 그대로 전달한 이 드라마는 생각만 해도 머리 아픈 작금의 현실에서 잠시 도피할 수 있는 해방구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캡처

‘응답하라 1988’의 시작은 올림픽을 앞두고 사회정화를 위한 명분으로 판자촌 서민들을 거리로 몰아내며 표면적인 선진국 모습을 애써 만들려했던 노태우 정권의 폐단과 모순의 출발이지만 그 시대 삶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며 현재 사회적 중심에 선 40대 중반의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할 수 있습니다.

윗집에서 작은 소음만 나와도 언성을 높이며 핏대를 세우는 현실과 달리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반찬을 나눠 먹던 골목길 가족들은 드라마를 시청하는 40대 세대에게는 결코 낯설지 않은 모습입니다.

싸구려 동네 미장원서 뽀글뽀글 볶은 아줌마 파마 3인방은 그 시대 억척스럽지만 정감 넘치던 40대 세대의 어머니의 모습이었고 메이커 운동화 삥 뜯던 학교 일진들 역시 지금은 아련한 기억에 남아 있는 추억이 아닐까 합니다.

이 드라마의 백미는 그 흔한 사랑타령이나 돈 많은 재벌가 얘기, 경영권을 놓고 자식이 부모를 상대로 미친 듯 폭언을 질러대거나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자존심을 건 막장 연기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저 한 시대의 흐름에 맞춰 없는 살림에도 자식의 건강과 진로를 걱정하는 가난한 아버지의 모습, 출근하는 남편과 등교하는 아이들의 아침을 챙겨주고 동네 친한 아낙들이 모여 소소한 일상에서 찾는 즐거움 등 당시의 생활상 모습 하나 하나 놓치지 않고 전하고 있습니다.

억척스럽지만 이 소박한 삶의 과거를 이제는 직장과 사회에서 기반을 마련한 40대 중반의 세대는 빠져들고 있습니다. "옛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나오는 이 드라마를 보는 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는 40대 중반의 대기업 부장의 말처럼 ?응답하라 1988은 이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진정한 해방구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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